"글로벌금융위기로 주가가 많이 빠진 바로 지금 은행주를 사야 합니다. 은행주 주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경기가 이제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어요. 지금이 가장 쌀 땝니다. 이제 은행주가 치고 올라갈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글로벌 위기를 불러온 것이 금융주 아닙니까. 아직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지금 투자한다는 건 모험이 아닐까요?"

리먼브러더스 파산의 충격을 벗어나 주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던 2009년 3월. 서울 여의도동 신한금융투자빌딩 19층에 있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이하 신한BNPP자산운용) 회의실에서는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열리는 리서치회의가 논쟁의 장이었다. 이 회의에는 종목·업종분석을 담당하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리서치본부의 애널리스트만 참석한 게 아니었다. 실제 펀드를 운용하는 주식운용본부 소속 펀드매니저까지 모두 30여명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은행주에 대한 비중 확대 여부가 격렬하게 논의됐다. 금융위기로 다른 업종보다 큰 낙폭을 보이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던 은행주를 이제 적극적으로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 리서치본부의 의견이었다.

리서치본부는 거시경제 예측을 발판으로 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할 것이라는 점, 금융권의 추가적인 부실규모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 은행의 조달비용하락을 통한 순이자마진 개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을 매수 이유로 들었다.

펀드매니저들로 이루어진 주식운용본부는 장고 끝에 과감하게 리서치본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부터 펀드의 은행주 비중을 늘려가기로 한 것이다. 당시 다른 어떤 자산운용사보다 발빠른 매집이었다.

예측은 적중했다. 코스피 지수 금융업종지수는 3월 초 바닥을 찍고 급등해 11월까지 80%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대비 30%p(포인트) 이상 높은 상승률이었다.

이것이 신한BNPP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펀드들의 수익률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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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 후 운용·리서치 인력 강화

신한BNPP자산운용은 2009년 1월2일 합작회사인 신한BNP파리바투신과 신한금융그룹 계열 SH자산운용이 합병해 출범한 회사다. 합병전에 수탁고 기준으로 시장점유율 6위와 9위인 두 회사는 합병후 수탁고가 27조원에 달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투신운용의 뒤를 잇는 업계 3위 거대 자산운용사의 출범이었다.

미국 증시가 십여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지고, 대형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미국 정부의 구제자금이 수혈되던 시기, 누구도 통합자산운용사의 미래를 자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한BNPP자산운용은 합병 이후 조직 개편과 운용 강화, 프랑스 BNP파리바의 선진운용 기법 도입을 통해 역량 강화에 나섰다.

<한경닷컴>은 신한BNPP자산운용 사무실에서 김해동 리서치본부장(49·사진 왼쪽)과 김영기 성장형운용팀장(40·사진)을 만났다. 두 사람은 통합 신한BNPP자산운용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해동 본부장은 합병 전 SH자산운용에서 주식운용본부장으로 주식운용 및 리서치를 총괄하며 'SH 탑스밸류(현 신한BNPP 탑스밸류)' 펀드를 국내 가치주 대표 펀드의 하나로 키운 인물이다. 탑스밸류’펀드는 2007년 초만 해도 100억에 불과하였으나 현재는 꾸준한 성과에 힘입어 7,000억 규모에 육박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1988년 대한투자신탁에 입사해 자산운용업게에 발을 디딘 이래 펀드운용과 리서치 경력만 21년이 넘는다. 합병 후에는 신설된 리서치본부로 자리를 옮겨 17명의 리서치본부 인력을 총괄하며 일임계좌를 포함하여 3조 5000억이 넘는 국내 주식형 펀드의 운용 지원에 힘쓰고 있다.

김영기 팀장은 1996년 대한투자신탁에서 주식투자전략 애널리스트로서 첫 걸음을 내딘 뒤 주식운용을 맡게 됐다. 그 역시 13년 경력의 고참 펀드매니저다. 신한BNPP자산운용의 대표 성장형 펀드라고 할 수 있는 '신한BNPP 미래든적립식' 펀드를 맡아 운용하고 있다. 특히 합병 후 리서치본부 강화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통해 펀드 수익률을 크게 개선시켰다.

'신한BNPP 미래든적립식' 펀드는 연초 이후 55% 가까운 수익률로 코스피지수 대비 15.8%p(포인트)대의 초과수익을 실현했고, 1년 기준으로는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 상위 10%대에 올라와 있다. 이 펀드는 규모가 3000억대로 신한BNPP자산운용을 대표하는 성장형 펀드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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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팀장은 "신한BNPP투신운용과 SH자산운용의 합병으로 대형화되면서 회사의 성장과 함께 리서치 능력이 제고됐고, 덕분에 수익률이 크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통합과 함께 주식운용본부와 리서치본부 총 인원이 10명 중반에서 30명 수준으로 증가하면서 심도 있는 분석을 적절한 타이밍에 내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현재 매일 아침 7시45분에 운용본부와 리서치본부가 모여 리서치회의를 하고 있으며, 이 시간에 종목 분석 및 투자전략까지 결정하고 있습니다."

합병 후 신한BNPP자산운용은 주식운용본부 내에 있던 리서치팀을 리서치본부로 격상시켜 10명에서 17명으로 인원을 늘렸다. 주식운용본부 운용인력도 6명에서 12명으로 키웠다.

김해동 본부장은 "천 개가 넘는 상장종목 중 투자할 만한 종목을 골라 300개 가까이 모은 유니버스를 기초로 구성한 모델포트폴리오를 리서치본부에서 관리하며, 실제 펀드의 종목 편입은 이 모델포트폴리오를 참고하여 펀드매니저가 한다"고 설명했다.

◆ 리서치 지원 뒷받침된 탑다운 방식도 중요

대부분의 펀드매니저가 바텀업(bottom-up, 시장보다 개별 종목 가치에 중심)을 중요하게 생각는 추세지만, 김영기 팀장의 의견은 탑다운(top-down, 거시적인 시장전망을 통해 종목 선정) 역시 그만큼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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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주 위주로 투자할 땐 거시경제와 제반 지표 변수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형주 등락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는 기업자체의 가치 못지 않게 글로벌 경기이슈, 환율, 경쟁자 상황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김 팀장은 "최근 주가 흐름을 보면 원화가 절상되면서 수출주들이 조정을 받고 부진했던 내수주들이 선방한 상태"라며 "항상 거시경제 변수를 고려해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밝힌 은행주에 대한 투자성공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래서 중요한 게 리서치 능력이다. 펀드매니저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경제흐름과 개별 기업의 기초체력을 전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탄탄한 리서치의 지원 시스템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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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동 본부장 역시 20년 넘게 펀드를 운용한 경험자로서 이에 동의한다. 그는 실제로 SH자산운용에서 '탑스밸류'펀드 운용 당시 리서치파트를 강화하면서 달성한 성과로 수탁고 100억원짜리 펀드를 8000억원까지 늘린 바 있다.

김 본부장은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변화를 놓치지 않게 체크하려면 리서치를 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투자철학에 공감한 김 팀장은 리서치에 입각한 기업가치 분석 덕분에 성공한 종목으로 '엔씨소프트'를 꼽았다.

지난해 말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3만원 밑으로 떨어질 당시 엔씨소프트를 눈여겨보다 대량 매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보유 현금 및 건물 가치 이하로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어요. 반면 '아이온'이라는 온라인게임의 성공 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주가 바닥은 탄탄하다고 봤죠. 앞으로 상승 여력이 크다고 보고 매수에 나섰습니다."

김 팀장은 엔씨소프트를 4만원 수준에 사들이기 시작해 3% 비중까지 보유량을 늘렸다. 엔씨소프트 주가가 고점인 20만원 가까이 왔을 때 일부 매도해 수익을 확정지었지만, 지금까지 보유중인 물량은 주가가 재차 상승할 때까지 꾸준히 보유할 계획이라고 했다.

◆ "펀드매니저는 매일 시험보는 직업"

펀드매니저 개인의 주식매매 감각보다는 체계화된 분석과 잘 갖춘 시스템에 따라 수익률이 향상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펀드매니저의 '덕목'도 과거와는 달라졌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위기를 겪고 국내 금융시장이 점차 선진화되면서 리턴(수익률)과 함께 리스크(위험) 관리도 중요시하는 추세다.

김 팀장은 "과거에는 수익률을 몇 퍼센트 올렸는지가 성과의 잣대였다면, 최근에는 리스크 대비 리턴까지 평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단순히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수익률 변동성이 크지 않은지, 펀드 유동성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등도 제대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BNP파리바그룹의 본사도 방문하는 등 선진국 운용의 시스템을 도입해 적용하는 중"이라며 "앞으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은 다른 국내 자산운용사에도 점차 강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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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통하는 '좋은 펀드매니저의 조건'도 있을 법하다.

김해동 본부장은 펀드매니저에 대해 '매일 시험을 보는 직업, 그것도 학과 공부와 달리 미리 정해진 정답이 없는 시험'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은 필수다.

"사람들은 시험 보는 걸 제일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펀드 매니저는 매일 자신이 갖고 있는 펀드를 가지고 시험을 치른다고 봐요. 특정 종목을 살 건지 팔 건지 아니면 그대로 가지고 있을 건지 등등 하루하루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지요. 시험 결과는 다음날 바로 전산에 냉정하게 숫자로 표시되고요."

유능한 펀드매니저를 꿈꾸며 입사했다가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 사람도 부지기수다. 스트레스로 신경쇠약에 걸리거나 과로사까지 하는 경우도 봤다.

김 본부장은 또 "머리는 좋은데 제대로 결정을 못 내리는 젊은이들이 많다"며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고려한 다음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경중을 따져 중요한 것을 보고 과감히 결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영기 팀장은 펀드매니저의 자질로 '성실'을 첫째로 꼽았다.

김 팀장은 "경력 10년이 넘어가는 펀드매니저들은 삼성전자 같은 종목을 10년째 보고 있는데, 말하자면 재수, 3수를 넘어 10수를 하는 셈"이라며 "게을러지고 관성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종목에 대한 성실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해동 본부장과 김영기 팀장 모두 대학을 졸업한 직후 주식시장에 매료돼 펀드매니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당시 국내 단 3개만 존재하던 '3투신' 중 하나인 대한투자신탁에 입사해 경력을 쌓기 시작한 점도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이 생각하는 펀드매니저의 성공조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균형과 조화에 대한 감각'이다.

"강세장일 때만 잘하거나, 약세장일 때만 잘하는 매니저를 많이 보아왔는데 그렇게 해서는 이 바닥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합니다. 탐욕과 공포가 만연하는 변화무쌍한 주식시장에서 이를 극복하고 시장을 거슬려 외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롱런'하는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죠. 바로 균형 감각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글=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