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집값은 어떻게 움직일까. 지난 9월 초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가 확대되면서 기존 주택시장 시세가 약보합세로 돌아서고 조정단계가 지속되자 수요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올 연말과 내년 초까지는 이 같은 조정장세가 이어진 다음,재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일부 하락할 것이란 목소리도 만만찮다.

GS건설경제연구소의 지규현 박사(39)도 '조정 후 하락'을 조심스레 전망하는 전문가다. 주택금융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1년 국토연구원을 시작으로 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을 거쳐 작년부터 건설사에서 근무 중인 그는 향후 주택시장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을 들어 정교한 논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먼저 최근 가격 보합세 추세에 대해 '수요 감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신규시장 투자수익이 재고시장보다 높기 때문에 수요자들은 분양주택쪽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서민주택인 '보금자리주택'의 집중 공급을 선언하자 내집마련 수요들이 상당수 대기수요로 돌아섰다"며 "지난해 금융위기를 거치며 실질소득이 감소했지만,주택가격은 크게 조정받지 않아 주택 구매력 자체가 떨어졌다는 점도 이유"라고 말했다.

지 박사는 특히 구매력 측면에서 실업률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근로시행에 따른 감소분을 제외하면 지금도 실업률이 만만치 않은 만큼,이에 따른 소득 감소가 주택구매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둔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1년 이상 끌어온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이것이 실업률 증가로 이어져 내년 집값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집값은 안정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지 박사는 "인구는 줄어들더라도 세대는 늘어난다고 하지만,세대수 증가 속도 역시 분명히 둔화되고 있다"며 "주택을 새로 구입하는 수요의 80%를 차지하는 35~50세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기본적으로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주택공급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신속하게 대량 공급돼 왔다"며 "거시경제도 이제는 고성장으로 가기 힘든 상황인 만큼 수요가 갑자기 폭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 집값은 소폭이나마 상승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만성적인 수급불균형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인구 집중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서울의 신규주택 공급과 입주물량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보금자리주택이 공급되기는 하지만 사실상 전국에서 수요자가 나타나는 서울 지역의 주택 수요를 만족시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서울 집중성과 관련해 "불과 3,4년 전만해도 서울 강북권에 살기보다는 한 시간 이상의 출퇴근 시간을 감내하며 용인이나 파주 등 쾌적한 신규 택지지구에서 살겠다는 수요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뉴타운 개발과 각종 르네상스 계획 등 서울의 도심 재생이 본격화되면서 도심의 가치가 높아져 수요가 집중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수도권 신도시와 지방 주택시장 활성화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신도시와 관련해서는 "서울 도심 중심성 강화와 보금자리주택 공급으로 이전에 각광받던 수도권 내 신도시와 택지지구는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이 돼버렸다"며 "매년 분당신도시만한 물량이 보금자리주택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들 지역은 가격의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개별 신도시와 택지지구가 서로 경쟁하며 교통 인프라나 자족기능,특수목적고 등의 유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시장에 대해서도 "미분양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은 만큼 짧아도 내년까지는 조정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전국적으로 대량 공급된 아파트의 입주가 계속되고,매수세는 약화된 상태여서 미분양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면 집은 언제 사야 할까. 지 박사는 "주식을 언제 사고 팔아야 하는지보다 말하기 더 어려운 질문"이라며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고 헛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대출을 끼고 집을 매입하는 시기는 2005년을 마지막으로 끝났다"는 게 이유다. 지역별로 집값 상승 가능성에 대한 꼼꼼한 조사와 함께 본인의 재무능력을 점검해 주택 매입에 나서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지 박사는 그러나 투자재로서 주택 가치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수급 상황을 떠나 가격이 오르는 집들은 지역에 따라 존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0년부터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미국 집값이 크게 올랐는데,집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지 박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듯,부동산시장에서도 주택 상품 발달에 따른 신규 수요 창출이 가능하다"며 "다만 이 과정에서 대량 공급 위주의 주택 공급 패러다임이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