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통합법이 본격 시행된 올해 한국거래소는 투자자보호를 강화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상장폐지 실질심사의 도입이다. 상장폐지 실질심사란 영업실적이나 최소 거래량 등의 '양적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질적요건'에 미달하면 심사를 거쳐 퇴출이 가능하게 한 제도다. 경영진의 횡령ㆍ배임이 대표적인 '질적요건'에 해당한다.

그간 한계 기업들이 요리조리 상장폐지 규정을 피해가며 '머니게임'의 장(場)이 된 것을 감안하면 상장폐지 실질심사는 나름 시장 정화기능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유가증권(코스피)ㆍ코스닥 시장의 한계기업 퇴출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투자자들이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코스피 상장사 케드콤은 지난달 21일 공시를 통해 "회사의 보유자금에 문제가 있어 사고유무를 확인 중"이라고 밝힌데 이어 이틀 뒤인 23일 "증자로 마련한 자금 259억원 가운데 185억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발표했다. 공모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한테 자금을 조달해 놓고 이 돈의 상당액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거래소는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제재를 할 근거가 없다는 게 거래소의 설명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전ㆍ현직 경영진의 다툼 중에 케드콤의 횡령ㆍ배임 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스닥과 달리 코스피 상장사는 법원의 횡령ㆍ배임 판결이 확정되고, 이로 인해 자본 전액이 잠식됐을 경우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법원의 확정 판결 이전까지 혐의만으로 실질심사는 물론, 투자유의 조치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코스닥시장에서는 경영진의 횡령ㆍ배임 혐의가 발생해 회사가 이를 공시하는 즉시 해당기업의 주권매매 거래는 정지되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까지 오른다. 올해 코스닥시장에서는 '질적요건' 미달로 인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된 곳은 43개였다. 또 이 가운데 14개사가 실제 퇴출까지 됐다. 올해 상장폐지 된 코스닥 기업 61개사의 23%를 차지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변동이 잦은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사유가 더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나, 코스피 상장사에도 한계기업에 대한 퇴출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거래소 관계자도 "두 시장에 서로 다른 퇴출기준이 있어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제도를 보다 합리적으로 보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