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제도가 겉돌고 있다. 대부분의 상장사들이 "주가가 급등락하는 이유를 밝히라"는 조회공시 요구에 일단 부인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어서다. 투자자들에게 주가 변동 사유를 알려준다는 본래취지가 퇴색하고 있어 제도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주가 급락에 대한 조회공시에 답변을 내놓은 에프씨비투웰브(옛 로이)는 단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탤런트 견미리씨와 가수 태진아씨의 주가 조작 혐의가 불거지며 지난달 29일부터 하한가로 곤두박질친 데 대해 지난 4일 오전 "주가급락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항으로 현재 진행 중이거나 확정된 사항은 없다"는 '부인공시'를 내놨다. 그러면서 '다만'이란 접속사 뒤에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을 덧붙였다. 공시제목만으로는 억울하게 주가가 급락했다는 인상을 줬던 셈이다.

우연찮게 당일 주가는 6.07% 급등하며 마감했다. 그렇지만 이후에는 이틀 연속 떨어져 6일 주가는 3만4050원으로 올해 최고가의 4분의1 토막 수준이었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 거래소의 조회공시 19건 가운데 "특이사항이 없다"는 취지로 나온 답변이 11건이나 된다. 나머지 8건도 확정된 사항이 없다는 모호한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거래소 관계자는 "조회공시 규정상 회사의 주체적인 활동이 아닐 경우엔 특이사항이 없다는 내용으로 답변이 나온다"며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초 취지와는 동떨어지게 운영되는 양상인데도 절차상으로는 적절하다는 것이다.

조회공시 요구시점이 너무 늦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프씨비투웰브의 경우 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한 때는 상한가를 쳤던 주가가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이 투자자들에게 전해지면서 이후 나흘 동안 42%나 떨어졌던 지난 3일 오후였다. 5일간 30% 이상 급락(또는 급등)했을 때에야 조회공시를 요구한다는 내부 규정에 따른 것이다.

증권업계에선 조회공시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며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