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가치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제로 수준의 초저금리로 인해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런던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대비 달러 환율은 1.5017달러를 기록,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1.5달러 선을 상향 돌파했다. 지난 3월 1유로=1.25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7개월 만에 유로 대비 달러의 가치가 20%나 하락한 것이다.

유로 엔 파운드 등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사상 최저치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지난 22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는 75.09를 기록,사상 최저치인 지난해 4월의 71.33에 다가섰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세계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달러 약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달러 가치를 낮게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근 "국제 무역 불균형이 다시 심화될 수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기축통화 대체 논의에서 나타나듯 달러화에 대한 신뢰도 예전같지 않다. 미국의 제로금리가 계속되고 있어 달러를 빌려 다른 통화로 표시된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트레이드도 달러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올해 초까지 달러화가 강세를 띠기도 했지만 이는 기축통화 효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며 "달러 약세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러 약세가 계속된다면 원 · 달러 환율은 하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정 수석연구원은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등으로 달러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러 약세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이 단기적으로는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약세를 내버려 두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축통화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달러 가치를 높이려 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달러 약세는 곧 국제경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며 "미국은 일시적으로만 달러 약세를 용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역사적으로 보면 달러 가치가 급격히 하락한 뒤에는 5~10년간 달러가 강세 또는 안정세를 보였다"며 "달러 약세가 대세라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작성한 외환 동향 보고서에서 "미국의 재정적자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고 하는데 유럽 국가들도 금융위기 이후 만만치 않은 재정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달러 약세론에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달러인덱스도 75를 고비로 하락세가 진정되는 모습"이라며 "달러 약세가 심화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