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 기조가 지속하면서 각국이 `총성 없는 환율' 전쟁을 펼치는 가운데 국내 외환 당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1,100원대로 내려온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전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단기간 급락하면서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는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경쟁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원화 가치 급등과 같은 쏠림현상은 경제 주체들을 혼란에 빠트리고 투기자금 유입을 초래해 쏠림현상을 가속화하기 때문에 당국이 가장 경계하는 대목이다.

당국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전방위 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원화가치 단기간 급등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6월 말 1,273.9원에서 9월 말 1,178.1원으로 95.8원이나 급락했다.

이 기간 원화 절상률은 8.1%에 이른다.

이러한 원화 가치 상승률은 브라질 헤알화(10.6%)나 콜롬비아 페소화 (11.0%) 등 남미 국가와 폴란드 즐로티화(10.4%) 등 동유럽 국가 통화보다는 낮지만 일본 엔화(7.0%), 대만 달러화(2.5%), 싱가포르 달러화(2.7%) 중국 위안화(0.1%), 홍콩 달러화(0.0%), 태국 바트화(1.8%) 등 주요 아시아 통화보다는 높다.

원화 및 주요국의 통화가치 상승은 미 달러화 약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미국이 국제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달러화 약세를 용인하는 점이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최근 국제금융위기 주제 콘퍼런스에서 "세계경제가 회복하고 무역량이 다시 늘어나고 있지만 국제 무역불균형이 또다시 심화할 수 있다"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통화절상 압력을 높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달러화가 반등하기도 했지만 약세라는 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삼성선물 정미영 팀장은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거둬들이겠다는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달러화 약세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관측했다.

국내적으로는 무역 및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 유입, 빠른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이 원화 가치 급등에 일조했다.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지나치게 저평가된 원화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어 환율은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가치가 급등하면 국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채산성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최근 브라질 정부가 미 달러화에 대해 2%의 금융거래세(IOF) 부과라는 초강수를 둔 것도 달러화 유입 급증으로 헤알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브라질 수출업체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 "외환시장 쏠림 막는다"
우리 외환당국도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을 태세다.

당국은 지금까지 시장 기능을 존중하되 과도한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특히 국내 외환시장은 외환 거래 규모가 경제규모에 비해 작은 데다, 자본 규제가 적어 외국인들의 투자자금 유출입이 많기 때문에 외부충격에 의해 쉽게 출렁이는 문제가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환율 정책은 자유화 흐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환율이 급격히 움직이지 않도록 수급 조절을 해주는 것"이라며 "시장 역할을 존중하되 거래량이 적어서 특정 세력의 움직임에 좌우되면 정부가 대응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당국은 그동안 환율이 급락하면 구두 개입과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을 통해 하락 속도를 조절해 왔으며 공기업과 은행에 대한 해외차입 규제 등을 통해 달러 수급 조절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환율의 쏠림 현상이 지속되자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외국계은행의 국내 지점(외은지점)에 대한 외화 차입 규모 제한 등 추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외은 지점은 해외 본점에서 낮은 금리로 달러를 빌려와 국내 통화스와프 시장에서 원화로 바꾼 뒤 원화 국채 등을 사들이는데, 달러 차입을 줄이면 환율 하락 압력도 어느 정도 완화된다.

정부는 이외에 은행 외화 부채 비율의 상한제 도입, 외환보유액 확충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규제 강화시 논란 일듯
하지만 외은지점 외화 차입 규모 제한 등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에도 외은 지점에 대한 규제 강화 소문이 퍼지자 채권값, 원화가치, 주가가 일제히 트리플 약세를 나타냈었다.

SC제일은행의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외은 지점을 규제한다고 달러가 못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면서 "섣불리 규제하면 국제적으로 `규제국'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어 한국이 `금융허브'가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도 "돈은 앞문을 막으면 뒷문으로 들어오게 돼 있다"며 "규제를 했다가 이미 국내에 들어온 자본마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외환 보유액 확충도 대외신인도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통화량 흡수를 위한 채권 발행 비용이 부담될 수 있고, 달러 매수 개입을 통해 보유액을 늘리면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힐 가능성도 있다.

외환보유액은 9월말 현재 2천542억5천만 달러로, 이러한 증가 추세가 지속되면 내년에는 3천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연구원 장 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내년에는 외환보유액이 3천억 달러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다"며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이 통화안정증권 발행비용을 밑돌면 역마진이 발생하지만, 어느 정도 적자는 보험료 성격으로 감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심재훈 최현석 김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