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투자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 다음 분기에 (또는 내년에)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등의 단발성 정보를 이용하여 주가의 단기 움직임에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 단순한 필승전략(?)은 투자자에게 끊임없는 희망을 심어주지만 정작 토실토실한 열매를 맺는 유종의 미로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사 운이 좋아서 몇 번의 매매에서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단 한번의 실수나 방심 또는 오판으로 ‘한 번에 훅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또는 “맑은 샘에서 맑은 물이 난다” 등의 속담들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비단 투자에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이 가지는 근원을 살펴보면 기초가 부실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투자 활동은 ‘투자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 반석 위에 세워지지 않은 집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데 모래 위에든 반석 위에든 지어진 모든 집들이 기본적인 외형 면에선 같아 보이듯이 여럿의 투자가, 전문가 그룹,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투자전략과 방법론 사이에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향후 3개월 간 OO기업의 주가는...”이라는 표현에는 OO기업 주가의 단기 움직임에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사전적 의도가 이미 암시되어 있다. 한 판의 확실한 카드 게임에 전 재산을 걸 수 있듯이 특정 정보나 특정 기간의 주가 움직임에 돈을 거는 것이 무작정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들은 짧은 기간 안에 승부를 짓는 단기 차익거래(arbitrage)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과 일반 개인투자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사고력, 정보력, 그리고 자본력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열위에 있는 사람이 ‘그들의 리그’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맞붙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국제금융의 중심지인 월 스트릿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보통 사람도 많이 노력하면 워렌 버핏의 투자 방식을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골드만삭스의 기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채권이든 주식이든 투자의 ‘본질’은 증권을 발행한 주체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한 판, 한 판을 운에 걸고 하는 도박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다. 우리는 ‘주식투자’라는 수단을 통하여 특정 기업이 사업의 열매를 맺어가는 과정에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다. 투자와 함께 보유하게 되는 주식은 동반자로서 받게 되는 증서이다. 버핏의 명언처럼 주식투자의 본질이란 “5년 동안 팔 수 없어도 살 만할 가치가 있는” 기업이 향유하게 될 미래의 과실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주인’의 입장에서 기업을 바라볼 때 투자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우리는 기업의 미래를 보고 우리의 돈을 투자한다. 우리가 기업에 투자한 원금에 대한 보상 여부와 그 규모는 기업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올려 얼마만큼의 주주가치를 창출하느냐에 달렸다. 수 많은 주주들의 원금이 모여 기업의 총 투하자본이 되고 이 투하자본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어디론가 투자된다. 투자의 결과가 (투자가들의) 사전적 기대를 충족할 때,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열매를 맺을 때 기업의 주가는 레벨업 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 일련의 과정을 기업가치의 재평가(re-rating)라는 전문단어로 표현한다.

결국 주주가치는 이익에 기초한다, 아니 기초해야 한다. 주주가치의 증대가 확인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와중에 ‘차트의 그림이 예뻐서’ 주식을 사는 행위는 논리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주식을 비싸게 사주는데 베팅한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주주가치의 증대가 확인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가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그 기업의 주식을 산다면 그는 필경 ‘바보’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월 스트릿에서는<바보 이론(Greater Fool’s Theory)>이라 칭하며 경고한다.

한 기업의 주주가치는 그 기업이 지금까지 창출해온, 그리고 앞으로 창출하게 될 이익에 기초해야 한다는 진리에 충실하자. 지금까지 이익을 낸 결과로 회사 내에 이미 쌓여있는 이익, 즉 이익잉여금은 기업의 정태적 가치를 담고 있고 미래에 창출될 이익은 동태적 가치를 반영한다. 이 시각에서 볼 때 지난 6개월 간의 외국인의 한국 주식에 대한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은 눈에 뛰게 달라졌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적지 않은 투자자들이 국내기업의 투명성 문제를 논하지만 한국을 포함하여 다섯 개의 다른 나라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내가 본 한국의 기업군은 상대적으로 투명한 집단에 포함된다. 더욱이 현 정부 출범 후 이 추세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거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상태에서 국내 기업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정태적 가치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본질’에 충실한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이 그냥 스쳐 지나갈리 없는 매력적 상황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가치투자론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이익잉여금 중 이익준비금과 법정적립금을 쌓은 후 나머지는 주주에게 환원되어야 하는 주주가치 자원이다. 정기 배당을 늘리건 특별배당을 실시하건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을 하건 간에 언젠가는 주주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언젠가는’이다. 만약 대상 기업을 영속적 시각에서 ‘계속기업(going-concern)’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 개념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의 본질에 충실하지 않으면 이 개념을 지나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태적 가치 측면에서 본 한국의 일류기업들은 타 국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수년간 한국기업은 투자를 조절해왔다. ‘극대화’보다는 ‘최적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리만 사태가 불거진 2008년 9월에 비해 한국의 제조업 가동률은 오히려 약 2% 정도 상승한 상태이다. 반면 미국, 유로, 일본의 생산 기지는 2008년 9월 당시 수준의 80~90%대에서 가동되고 있다. 고성장기에 있는 중국의 가동률이 리만 사태 이후 불과 5% 정도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한국경제와 기업의 현 주소를 쉽게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외국 스마트머니(smart money)가 금년 초부터 한국 주식을 쓸어 담아온 배경에는 국내 기업에 내재되어 있는 (상대적으로 높은) 정태적 가치라는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 향후에 기대되는 미래의 성장요소가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이미 쌓아 놓은 돈이 많은 상태에서 '고정비 누수 최소화'에 따른 가치 보존 효과 때문에 돈을 쏟아 부은 것이다. (미래의 성장요소, 환율효과, FTSE 선진국 지수 편입 등은 모두 부차적 요소이다.)

시장이 상승하면서 정태적 가치는 점차 소멸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제부터 기업 간의 '옥석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주가가 많이 상승한 현 시점은 시장 전체에 베팅하기보다는 개별 기업의 재무 상태, 특히 이익계산서보다는 대차대조표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자기자본이 얼마인지, 적립금은 어떤 목적으로 얼마만큼 쌓였는지, 재고자산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비용 처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설비를 포함한 유형자산이 노화되지 않았는지, 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대체되어야 하는” 설비는 얼마나 되는지 등등을 낱낱이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재무)분석은 정태적 가치를 찾는 동시에 미래의 동태적 가치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본질적’ 분석 과정이다. 많은 투자가들이 차트와 수사에 휘둘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외국인 투자가들은 투자 대상기업을 원칙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해부’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자.

<알프레드 박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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