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강남역 부근의 현대증권 부띠크모나코 지점.

이 지점 직원 8명은 '회장님이 떴다'는 소식에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날 오후에 방문한 회장님은 다름아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지난해 10월 이 지점이 오픈했을 당시에 현 회장이 방문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사전에 예고없이 진행됐다. 현 회장은 최경수 현대증권 사장과 강연재 현대자산운용 사장까지 대동하고 '현대그룹플러스'펀드에 함께 가입했다.

현 회장은 이날 '현대그룹플러스펀드'를 월 100만원씩 3년간 적립식으로 가입했다. 주식형펀드의 세제혜택 조건에 맞춰 소박한(?) 펀드가입절차가 이루어졌다.

앞서 현 회장은 지난 7월에도 현대자산운용 출범과 함께 판매를 시작한 '현대드림주식형 펀드'에도 가입한 바 있다.

현 회장은 현대자산운용이 출시하는 펀드마다 일일이 찾아가 가입하고 있다. 처음에는 상징성이 있다고 보였지만 이번 펀드가입은 사뭇 다르게 해석된다. 현대증권이 '여성우대' 서비스를 표방한 '부띠크모나코 지점'에서 가입한 장소도 그렇고 대상펀드가 범현대그룹에 투자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이번에 현 회장이 가입한 펀드는 현대그룹 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등 범현대그룹에 투자하는 펀드다. 자산운용을 통해 '현대'를 아우르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현대그룹플러스펀드'는 현대증권의 자회사인 현대자산운용이 운용한다. 주식시장에 상장되어있는 범현대그룹 27개사에 투자하는 펀드다.

시장에서는 '바이코리아(Buy Korea)'의 신화를 재현한다는 점과 동시에 예전에 대립각을 세웠던 범현대가에 폭넓게 투자하는 펀드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현정은 회장, 대립 세웠던 그룹사들에게 '투자의 손길'

현대가(家) 이야기는 200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 회장은 당시 남편 고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현 회장은 시숙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매집에 나서면서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또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과 경영권 분쟁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여의도에서 현대가(家) 싸움이 재현되는 모습이었다.

현대그룹 계열 현대증권은 신흥증권을 인수한 현대차그룹과 이름을 둘러싼 분쟁을 벌였다. 현대증권이 상호의 유사성을 들어 신흥증권(현 HMC증권)을 상대로 상호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신흥증권을 인수한 뒤 사명을 '현대IB증권→현대차IB증권→HMC투자증권'으로 세차례나 개명을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현대중공업도 지난해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을 인수하고 난 뒤 사명을 '하이투자증권', '하이자산운용'으로 이름을 바꿨다.

현대중공업은 현대차그룹과는 달리 자산운용사까지 인수했다. 현대증권이 현대자산운용의 설립을 준비할 때 속이 편치만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현대자산운용은 갈등을 다 털어버리려는 듯 범 현대 10개 그룹 27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내놨다. 현 회장이 1등으로 이 펀드에 가입한 것도 범현대를 아우르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펀드는 현대그룹(현대엘리베이터,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기아차그룹(현대자동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글로비스, HMC투자증권, 현대하이스코, B&G스틸), 현대중공업그룹(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을 주로 편입한다.

또 현대산업개발그룹(현대산업개발, 현대EP), 현대해상화재그룹(현대해상화재), 현대백화점그룹(현대백화점, 현대H&S, 현대DSF), KCC그룹(KCC, KCC건설), 한라그룹(한라건설), 성우그룹(현대시멘트), 기타(현대건설, 하이닉스, 현대종합상사, 한라공조)에도 투자한다.

◆강연재 현대자산운용 사장, 현대그룹통에서 현대운용통으로

물론 그전에 현대그룹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투자 현대차그룹리딩플러스펀드'와 '대신GIANT현대차그룹' 상장지수펀드(ETF)가 그것이다.하지만 실제로는 현대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17일에 설정된 '한국투자 현대차그룹리딩플러스펀드'는 현대차그룹과 대표기업의 비율을 35대 55의 수준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현대차그룹이 35%를 차지하는 데 그친 펀드다.

지난해 12월23일 상장된 '대신GIANT현대차그룹'은 현대차그룹와 협력업체에 주로 투자한다. 현대그룹주 8개 종목(현대차, 모비스, 현대제철, 기아차, 글로비스, 하이스코, HMC증권, BNG스틸)과 협력업체 2곳(한라공조, 한국타이어)으로 구성된 지수를추종하는 ETF다.

하지만 현대자산운용의 이번 펀드는 현대그룹을 집대성한 펀드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투자하는 업종도 다양하다. 더불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자동차, 조선, 건설, 반도체, 운송 등에 집중되어 투자되다보니 수익률도 뛰어난 편이다.

현대자산운용이 범현대그룹과 삼성그룹, 범LG그룹(LG그룹+LS그룹+GS그룹+LIG그룹)을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에서 범현대그룹펀드는 코스피 지수는 물론 다른 그룹들의 수익률을 웃도는 초과수익을 나타냈다.

범현대그룹은 연초대비 성과(2009년 1월1일~7월31일)는 물론 2003년 3월30일 신용카드 사태 이후 2009년 7월31일까지 운용성과에서도 뛰어났다.

범현대그룹은 연초대비 시가총액 비중이 100→156.4로 늘어난데 비해 삼성그룹과 범LG그룹은 각각 152.6, 145.0을 기록했다. 2003년 신용카드사태 이후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범현대그룹은 100→731.6으로 늘어났지만 삼성그룹과 범LG그룹은 494.3, 451.6로 범현대그룹의 시가총액을 훨씬 밑도는 모습이었다.

과거까지는 시뮬레이션일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자산운용의 선장을 맡은 강연재 사장의 면면을 보면 앞으로도의 펀드성과가 기대된다.

강 사장은 1979년 현대그룹에 입사해 그룹 종합기획실과 현대건설 상무, 현대투자신탁 상무 등을 거쳤다. 지난해까지만도 현대증권 부사장을 지냈다.

20년 동안 현대그룹의 '브레인'으로 재무와 금융, 기획, 영업, 운용업무를 두루 담당했다. 현대그룹의 인수·합병(M&A)과 신규사업 뒤에는 강 사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에 강 사장이 현대그룹에서 성장의 주역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미래 성장의 발판을 금융의 신수종인 '펀드'를 통해 마련하는 셈이다. '현대그룹플러스펀드'는 단순한 펀드상품으로 보이지만 현 회장의 '포용'과 강 사장의 '의지'의 합작으로 풀이된다. 시장은 범현대 그룹주 펀드가 증시의 또다른 기폭제가 될 지 주목하고 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