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을 156억원으로 불린 사나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펀드를 직접 판매하는 자산운용사의 대표, 펀드손실이 나면 보수를 안받겠다는 펀드매니저….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사진ㆍ49)을 이야기할 때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수식어들이다. 그는 156억원의 대박으로 남은 인생을 유유자적하면서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투자자문사를 차리고 이를 자산운용사로 키우면서 (자신의 말처럼) 고생길을 걷고 있다.

이 와중에 고된 출장길도 있었다. 강 회장은 7월 말부터 한 달여간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이 지난 7월께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이와함께 가진 여러 행사들을 끝내고 중국을 다녀온 것이다.

[직격 인터뷰]수익률 1만5500% 신화 강방천, 발상전환으로 '대박'
"중국에서 강행군을 했어요. 그래도 이번 출장으로 성과들이 꽤 있었습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 에셋플러스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강 회장은 다소 피곤해보였지만 얘기를 하는 내내 선물보따리를 풀어 놓듯이 투자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안경 너머로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을 번뜩였다. 그는 중국에 갔던 이유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중국인들이 한국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물론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을 통해서죠. 또 중국의 그린산업의 현황을 좀 보러 갔습니다. 특히 전기자동차 산업의 현황을 직접 체크하고 싶었습니다."

◆중국인 한국투자 추진…전기자동차 종목 보기전에 '구리'시세 살펴야

지난 해 6월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적격기관투자자(QDII)으로 인정받은 기관은 한국 자본시장 투자가 가능해졌다. 중국 금융당국은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기관투자가 중에서 적절한 자격을 갖춘 금융사를 QDII로 정해 해외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현재 QDII 허가를 받은 중국 금융회사는 은행 24개, 보험 22개, 증권·기금·신탁 41개 등 총 77곳으로 알려졌다. QDII 허가를 받은 자산운용사는 29개인데 강 회장은 이 중에 21개의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강 회장은 중국 예찬론자다. 평소에도 △중국에 투자하라는 말과 △중국에 밀접하게 뿌리내린 기업을 주목하는 조언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 그가 우리 돈을 중국에 투자하는 동시에 중국인들의 돈을 끌어서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해외적격기관투자자(QFII) 자격을 받고 국내 돈을 중국에 쏟아붇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남들과는 다른 강 회장식의 사고방식은 투자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가 말하는 투자는 '발상의 전환'에 가깝다. 음주운전 집중 단속 소식에는 보험주를 산다. 사고가 줄어 보험사들의 이익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급이 많아지면 건설주가 아닌 도시가스 공급회사의 주식을 사는 등의 방식은 일찌기 알려졌다.

최근 그에게 발상의 전환을 이끈 요인은 무엇일까? 바로 녹색성장산업을 일컫는 '그린혁명'이라고 한다. 그는 녹색산업들의 성장을 '산업혁명'에 빚대어 '그린혁명'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사회현상을 그린혁명의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중 그의 방식(그는 '에셋플러스의 방식'이라고 불렀다)을 통해 해석해야만 가치투자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린혁명을 산업부문으로 나누면 △태양력이나 풍력과 같은 대체에너지 △발광다이오드(LED) 등과 같은 에너지절감 △전기자동차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 중에 대체에너지나 에너지절감 산업은 화석연료에 종속되고 있습니다. 유가가 바닥이면 경쟁력이 없죠. 저는 그래서 전기자동차 산업을 주목했습니다."

전기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회사가 수혜를 입을 것이다. 전기배터리를 개발하는 관련 자동차 부품회사나 배터리 업체들도 시장에 엄연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들을 놔두고 중국 현지탐방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강 회장은 중국에 대체 무엇을 보러 간 것일까?

"전기자동차가 언제부터 상용화가 될까? 배터리는 리튬이온일까, 수소전지일까? 이런 등등의 생각은 과학자가 연구할 일이죠. 저는 전기자동차가 과연 어떤 산업과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현황을 알아보러 간 것입니다."

그는 얘기를 이어갔다.

"전기자동차는 어떤 에너지로 달릴까요? 전기 에너지겠죠? 전기 에너지로 바퀴가 굴러가려면 분명히 모터가 필요할 꺼예요. 모터 속에는 구리가 있을 겁니다. 저는 그 구리가 모터속에 정말 들어가 있나 살펴봤습니다. 중국에는 BYD라는 전기자동차 부품회사가 있거든요."

BYD는 1995년 세워진 세계 2위의 휴대폰 전지업체다. 전기차용 전지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개발하고 전기자동차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인 투자대가인 워런 버핏이 계열사를 통해 10% 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궁금증은 BYD에 가기도 전에 해결됐다. 중국 상하이 길을 지나가던 중 전기자전거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중국인 전기자전거 주인에게 모터를 한번 뜯어보자고 제안했다. 자전거 주인은 당연히(?) 거절했고, 강 회장은 그 자리에서 자전거를 샀다. 그리곤 자전거의 모터를 뜯었다. 역시 모터안에는 구리가 들어 있었다.

"이제 '구리'라는 원자재 자체의 가격도 올라갈 것이고 이를 이용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게 될 꺼예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때가 온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투자처를 빨리 찾아봐야죠."

강 회장은 BYD를 방문하고 자동차 기술의 시대가 한 세기 넘어간다고 분석했다. 기계의 시대는 가고 전기·전자의 시대가 될 것이며, 차에 엔진이 사라지고 모터가 들어가면서 엔진과 관련된 업체들은 위기를 맞게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남다른 안목을 가진 강 회장도 처음에는 평범한 증권맨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회계학'을 좋아하는 점 정도였다. 증권회사 재직시절 회계적 논리에 근거해 기업들을 분석했고 이로 인해 높은 수익도 거둘 수 있었다. 그렇지만 회계학만으로는 기업들의 가치를 모두 투영해 볼 수는 없었다. 회계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가치투자'의 방법을 생각해 내게 됐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투자로 '대박'을 터뜨리리면서 투자자문사의 사장으로 자산운용사의 회장으로 승승장구하게 됐다. 물론 적잖은 고비도 있었다. 그에게도 '쪽박'의 기억과 '백수'의 기억은 있으니 말이다. 지금과 같은 가치투자를 발굴하기까지의 남다른 노력도 숨겨져 있었다.
[직격 인터뷰]수익률 1만5500% 신화 강방천, 발상전환으로 '대박'
◆'대박' 뒤에 찾아온 '쪽박'…1등 기업에 투자키로 맘먹어

"글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156억원 중에 40억원은 프리코스닥에 투자했다가 날렸습니다. 20억원은 자문사 설립할 때 투자했어요. 나머지는 개인 자산으로 묻어뒀습니다."

강 회장은 1960년생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쌍용투자증권(현재 신한금융투자), 동부증권에서 펀드매니저로 근무했다.

1995년에는 3명의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이강파이낸셜서비스'라는 투자자문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자본금은 넉넉하지 못했다. 5000만원 정도만 손에 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종목이 대성자원(현재 대성산업). 당시 대성자원의 보통주 주가는 2만원 안팎이었고 시가총액은 18억원에 불과했다. 강 회장은 대성자원의 재무제표를 들어다보고 무릎을 쳤다.

"대성자원은 탄광자원개발 회사였어요. 대구도시가스나 다른 건실한 회사들의 지분을 20~30%씩 보유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탄광을 없애면 국고보조금을 줬습니다. 그런데 현금흐름표를 보니 이 돈이 '이익'이 아닌 '자본'으로 잡히더라구요. 주가가 뜰 수 밖에 없는 구조였죠."

분석을 마친 그는 6개월동안 돈이 생기는 대로 대성자원을 샀다. 2만원대였던 주가는 20만원으로 뛰어오올랐다. 순식간에 돈은 불어났고 자문사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박을 낸 탓일까? 그의 다음 투자 결과는 시원치 않았고 투자의욕마저 잃게 됐다.

"주식투자파트 외에 대안투자나 채권투자 쪽에서 돈을 벌어서 월급을 받았었죠. 하는 일도 없이 월급만 받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결국엔 회사를 그만두고 경기도 구리의 우리 집에서 백수로 지냈습니다."

1997년 회사를 그만둔 강 회장은 가진 돈 3800만원을 털어 달러로 입금했다. 외환위기로 달러가치가 올라갔을 때 6000만원까지 불어난 돈과 전세금을 빼서 1억원으로 주식에 뛰어들었다. 이 때 산 종목이 대덕GDS, 영원무역이다.

"'달러가 오르면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에 투자한다'. 이제는 당연한 투자원칙이지만 당시에는 외환위기 때문에 주식투자 자체가 뜸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이들 종목의 주가는 치솟았죠."

외환위기당시 4000원대에서 거래됐던 대덕GDS 주가는 이듬해인 2~3월에는 9000원대까지 치솟았다. 1500원 이하로 거래됐던 영원무역 또한 1998년 3월에는 3000원까지 상승했다.

반 년만에 자산을 두배 가량으로 불린 강 회장은 '우선주'에 주목했다. 우선주는 저평가의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배당매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다. 우선주 중에서 고르고 고른 종목이 바로 부국증권 우선주였다.

1998년 7~8월께 600~700원을 맴돌던 부국증권 우선주를 600원대에 담았다. 그해 11~12월께 이 주식은 1만4000~1만5000원으로 급등하면서 강 회장도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최저가와 최고가를 비교하면 약 240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엄청난 수익률을 다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강 회장은 1억원의 주식투자는 156억원으로 불리면서 주식투자의 신화가 됐다. 이에 대해 정작 본인은 '시기가 좋았을 뿐'이라며 슈퍼개미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위기는 극복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외환위기 당시에 투자를 했고,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된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까지 벌 기회가 없을 꺼예요. 이번 금융위기 때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미 경험(외환위기)을 한 탓에 예전만큼 많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그만큼 오름폭도 적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기적으로 잘 맞아서 수익률이 높았어요. 슈퍼개미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한사코 '슈퍼개미'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그에게 '작위'를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복덩이 아빠'라는 호칭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주식 대박과 함께 강 회장은 1997년에 늦둥이 아들까지 보게 됐다. 집에서는 지금 13살인 이 아들에게 '복덩이'라고 부른단다. 강 회장은 주식 수익금으로 복덩이 아들과 가족들이 살집을 경기도 용인에 마련했다.
[직격 인터뷰]수익률 1만5500% 신화 강방천, 발상전환으로 '대박'
여기저기 투자해 달라는 코스닥 회사들에게 40억을 퍼줬다. 그는 40억원으로 코스닥 회사 49개에 투자했다. 이렇게 투자한 회사중에 코스닥 시장에 남아있는 회사는 하나 뿐이라고. 100%의 성공비결을 물어보러 왔는데 강 회장은 100%에 가까운 실패담을 얘기했다.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지 엉덩이가 들썩여진다.

"돈을 벌었다고 얘기가 나오니까 여기저기서 투자해 달라고 손을 뻗쳐왔습니다. 몇 백만원에서 1억~2억원까지 투자금액도 다양했죠. 투자금액의 크기를 떠나 이제는 날린 돈이지만요."

쉽게 벌었기에 쉽게 써버린 것은 아닐까? 강 회장은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투자의 지침으로 여길만한 교훈은 얻었다고 강조했다. 바로 강 회장의 가치투자 원칙인 '1등 기업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투자에 실패를 하고 얻은 교훈은 바로 1등 기업에 투자하자는 것입니다. 경쟁력 있는 1등 기업은 망하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회사가 망할 것을 염두해 두고 청산가치를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의 미래가치를 내다보고 투자합니다."

그리고 그의 숙원인 자산운용사 설립을 위해 한 걸음을 떼게 됐다. 20억원을 떼내고 지인들을 모아 투자자문사를 설립했다.

◆투자자들을 끌어 모으다…"돈 못벌면 보수 안받습니다"

1999년 7월 어느날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강 회장은 에셋플러스투자자문주식회사 창립식에서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고객자산에 대한 운용보수는 1% 받겠습니다. 또 성과보수에 대해서는 20%의 보수를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수익이 나지 않으면 성과보수를 일체 받지 않겠습니다."

일명 '무수익, 무보수' 선언을 한 것이다. 강 회장은 1억원 이상의 자산을 일임계약시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위탁성과보수가 있는 장기계약만 체결했다. 기준수익를 초과한 수익에 대해서는 20%의 보수를 받았다.

이렇게 9년 동안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했고 손실을 본 해는 두 해 뿐이었다. 가치주 발굴로 높은 수익률을 안겨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에셋플러스는 2002년 3월에는 국민연금 위탁운용사로 선정됐다.이후 군인공제회, 정보통신부, 사학 연금관리공단, 교직원 공제회 등 기관들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했다.

자문사를 덩치를 키워갔고신뢰도 쌓았다. 지난해 6월에는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국내 자산운용사로는 처음으로 '직접투자'를 내걸었다. '펀드'만 팔지 말고 가치투자 철학과 장기투자의 원칙까지 전파하겠다는 의지였다. 고객들이 소중한 자산을 불완전판매 등으로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수익, 무보수' 원칙은 이어갈 수 없었다. 이런 수수료 구조의 공모펀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운용보수 내에서 수수료를 가급적 인하할 계획입니다. 장기투자를 우대하고 성과가 안 나면 수수료를 받지 않는 다른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직접판매를 고수하는 과정에서 47억원의 적자가 났어요. 앞으로 4년 정도 적자가 나도 버틸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올해는 시장이 살아난 덕분에 적자는 면할 듯 싶습니다."

에셋플러스는 앞으로 1인 점포 등 다양한 판매형태를 취해 국내 판매망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오는 10월 중에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현지 사무소를 열고 교포 자금을 끌어들일 예정이다. 그의 가치투자 철학을 태평양 건너까지 전파하겠다는 의지다. 그의 투자철학이 중국과 미국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 지 주목된다.

글=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한민수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