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1.8%로 상향조정한 지난 8월9일.기획재정부는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각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하는 등급위원회를 연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여름휴가를 하루 앞둔 허경욱 차관은 윤증현 장관의 지시를 받고 급히 홍콩으로 날아갔다. 허 차관은 10일 피치의 제임스 매코맥 아 · 태지역 평가담당 애널리스트를 만나 7월 초 연례협의 이후 한국 경제의 진전된 상황을 설명했다. 마침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가 타결된 직후였고 KT 등이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하면서 노사문제가 급진전 양상을 보일 때였다. 허 차관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경제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국가 신용등급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20여일이 지난 9월2일 피치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에서 '안정적(Stable)'으로 상향 조정했다. 작년 11월 하향 조정한 지 9개월여 만이다. 그것도 작년 말 이후 등급을 낮췄던 39개 국가 중 한국만 유일하게(투자적격 이상 국가 기준) 상향 조정했다.

피치가 작년 11월10일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은 경상수지 적자가 위험한 수준이고 금융시스템도 불안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당시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 신용등급 전망을 그대로 유지한 것과 달리 피치만 낮추자 일각에선 피치의 판단 착오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도 비공식적으로 피치에 "등급전망을 낮출 만큼 비관적이진 않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치가 이번에 등급 전망을 원상복귀시킨 것은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위기 극복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피치는 2일 공식 발표문에서 특히 한국 정부의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높이 샀다. 대외채무 상환불능 우려 개선,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력 등도 높게 평가했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경제정책포럼 조찬세미나 강연에서 2분기 성장률을 당초 잠정치 2.3%(전분기 대비)보다 상향된 2.6~2.7% 수준으로 추정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외 IB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상향 조정하고 있다. 다이와증권은 종전의 -1%에서 0.1%로 높여 IB 중 처음으로 연간 성장률을 플러스로 예상했다.

김익주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금융위기 후 세계적으로 신용등급 및 전망이 하향 조정되는 추세에서 투자적격 이상(BBB- 이상)으로는 한국만 상향 조정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다만 재정건전성과 북핵 문제 등은 앞으로도 워치 리스트에 두겠다는 게 피치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작년 말 '부정적'으로 등급전망이 떨어졌던 산업은행 등 17개 은행 및 증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재정부 관계자는 "피치가 은행 등의 신용등급에 대해선 언급이 없어 확신하기 이르다"며 "다만 국가 등급전망이 상향 조정됐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의 등급 전망도 뒤이어 조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디스,S&P 등 다른 신용평가사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무디스는 지난 3월 한국 정부와의 연례협의를 가진 뒤 7월에 한국의 신용등급(A2)과 전망(안정적)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S&P도 "최근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세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밝힌 만큼 조만간 열릴 등급위원회에서 현재의 신용등급(A)과 전망(안정적)을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정종태/이태명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