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의 순환매에 대응하기 위해 철강 화학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소비 회복 속도를 확인하면서 유통주를 다음 순환매 타깃으로 삼는 분위기입니다. "

김경덕 메릴린치 전무(사진)는 13일 홍콩 현지 투자자들과의 면담 결과를 이같이 소개했다. 김 전무는 전날까지 홍콩에서 장기 투자 성향의 롱텀펀드와 헤지펀드 관계자 20여명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는 "한국 증시가 너무 빠른 순환매를 보인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은 편"이라며 "우량주 위주로 장기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또 코스피지수가 지난달 중순부터 단기 급등하면서 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도 있었지만,이들도 정작 주식을 팔 용기는 없었다고 귀띔했다. 최근 상승 국면에서 시장을 못 좇아간 투자자들은 현 수준에서 선뜻 들어가긴 부담스럽다면서 조정이 나타나면 매수 기회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기업들이 예상보다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쏟아졌다. 김 전무는 "대만 등 다른 신흥국가 기업들에 비해 경기 하강 국면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진단이 많았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평가가 한 단계 뛰어올랐다"고 말했다.

이런 호평은 실제로 정보기술(IT) 자동차 금융 등 한국 대표주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로 이어지고 있다. 김 전무는 "한국 대표주에 장기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많았다"며 "기존 선호 업종 외에 순환매 분위기에 맞춰 그동안 시장 대비 상승률이 부진했던 철강 화학 등에 대한 관심도 컸다"고 전했다.

그는 "소비가 살아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유통주를 순환매의 다음 타깃으로 삼으려는 투자자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력 통신 등에 대해선 좀 더 기다리겠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조선업종은 여전히 비관적인 판단이 지배적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김 전무는 "미국 경기와 증시의 회복 기대감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도 1700선을 넘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면 증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개 투자자들은 기준금리가 오르기 3개월 전에 이익을 실현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내년 초부터 금리 인상이 시작된다고 예상하면 4분기는 조정장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