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 월가에서는 비관론자들이 확실히 고개를 숙이는 분위기다. 주가가 조만간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계속 주장해왔던 이들의 논거가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주말에는 비관론자들이 가장 우려해왔던 미국의 고용지표까지 개선된 것으로 나와 입지가 더욱 약화됐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낙관론이 확산되면서 '골디락스 증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커지는 상황이다.

경제와 증시에서 많이 쓰이는 '골디락스'라는 용어는 원래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됐다. 배고픈 한 소녀가 숲속을 가던 중 곰이 차려놓은 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먹기에 가장 좋았다는 내용이다. 이에 빗대 골디락스 증시라는 것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는 이상적인 국면에 접어든 상태임을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신경제'에 힘입어 증시가 호조를 보였던 때가 대표적인 시기다. 당시 주요 국가들은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성장 대안으로 정보기술(IT)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IT산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네트워크를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대되는 이른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특성이 있어 '저물가 속의 고성장'이라는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종전의 이론대로라면 한 나라의 성장이 잠재수준을 웃돌 때는 총수요 갭이 발생해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생산성 증대와 같은 공급 쪽 요인이 주된 성장동인일 경우 비록 성장률이 잠재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더라도 인플레 압력이 오히려 줄어드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이처럼 인플레 동반 없이 성장률이 높아진다면 증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최근 월가에서 골디락스 증시에 대한 기대가 나타나는 것은 일단 시기적으로 그럴 만한 상황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가고 경기가 회복되는 상황에서는 각국이 위기 이후 차세대 성장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책요인에 의해 위기가 극복된다 하더라도 1930년대 대공황 위기 이후 군수산업,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IT 산업, 2001년 9 · 11 테러 이후 금융산업 등과 같은 성장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위기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이번 위기에서는 세계 각국이 녹색산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한국의 '저탄소 녹색성장',미국의 '아폴로 프로젝트',일본의 '뉴21 플랜' 등이 대표적인 예다. 앞으로 기후변화협약이 구체화되면 될수록 녹색산업을 차세대 성장대안으로 육성하려고 노력하는 국가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흔히 녹색산업은 '외부경제 효과'가 높은 산업이라고 부른다. 외부경제 효과란 개인이 치른 비용(private cost) 이상으로 경제 전반에 혜택을 많이 줘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이 적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집 앞에 꽃밭을 일구면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효과가 비용을 부담한 주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는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녹색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들어간 비용 이상으로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면 과거 신경제 신화를 낳아 글로벌 증시에 황금시대를 가져왔던 IT 산업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비관론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월가에서 '골디락스 증시'에 대한 기대가 형성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녹색산업의 특성상 IT산업보다는 효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만들어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지나친 낙관론과 성급한 기대보다 이제부터 위기에 따른 후유증을 잘 처리하고 위기 이후 성장대안으로 녹색산업을 키워나간다면 골디락스 증시가 나타날 가능성도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