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올 들어 잇단 위기설과 북한 핵실험 등의 악재에도 주식과 채권을 합쳐 19조원 넘게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에도 아시아 증시 급락 여파로 선물시장에서는 9000억원 넘게 대규모 매물을 내놓았지만 현물(주식)시장에서는 사흘 연속 매수 우위를 이어갔다.

증시 전문가들은 단기 급등에 따른 부담으로 외국인의 매수 강도가 당분간 줄어들 수 있지만 북한 리스크가 장기화되는 와중에도 주식을 매입하고 있는 만큼 휴식기를 거치면 매수세가 다시 살아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3월 위기설'땐 매수로 전환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 들어 이날까지 주식과 채권을 19조3081억원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식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이날 921억원을 포함,10조3866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이는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시작되기 전인 2004년 한 해 동안의 순매수 금액(10조4838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특히 외국인은 신용경색 우려 등으로 위기설이 제기될 때 오히려 순매수 규모를 늘렸다.

이른바 '3월 위기설'이 나왔던 때가 대표적이다. 올 2월 8620억원의 주식을 내다 팔았던 외국인은 일본 은행들의 결산기와 맞물려 외화 자금난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 3월에는 오히려 '사자' 우위로 돌아서 1조3000억원가량의 주식을 순매수했다. 채권시장에서도 2월보다 많은 채권을 사들여 순매수 금액이 2조원을 넘었다.

마찬가지로 유럽발 금융위기설과 함께 북한의 핵실험,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지정학적 위험이 부각됐던 지난달 역시 외국인은 주식과 채권을 합해 7조원가량을 순매수했다. 5월 채권 순매수 규모는 2조7921억원으로 올 들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조윤남 대신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상대적으로 빠른 한국의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외국인의 매수 배경"이라며 "3분기까지는 경기선행지표 호전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외국인의 매수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물 · 옵션 만기일까진 속도 조절할 듯

다만 외국인이 주식 매수의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돼 단기적으로 국내 증시가 힘을 받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이 3일 연속 매수 우위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하루평균 매수 금액이 1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 선물시장에서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며 증시 변동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도 외국인은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가 급락했다는 소식에 선물시장에서 9195억원의 매물을 쏟아내며 주가 급락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에 대해 이승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11일 선물 · 옵션 동시만기일을 앞두고 매수 우위로 돌아섰던 외국인이 외부 악재로 증시가 출렁대자 매수 포지션 청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만 주식시장에서 나흘 연속 매도 우위를 나타내는 등 이머징 증시에 대한 매수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점도 속도 조절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신흥국 증시가 여타 선진국 증시보다 워낙 빠르게 반등한 데다 글로벌 증시 전반의 체력이 바닥나면서 외국인이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금단 삼성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을 대체할 만한 국내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그리 강하지 않아 지수가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만기일을 거친 후엔 외국인의 선물 매도가 잦아들면서 변동성이 다소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