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시장이 단기간에 급성장하는 동안 이를 뒷받침하는 인적 · 물적 인프라는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어 시장 발전에 큰 제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에 투자하는 브릭스펀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높은 인기를 끌며 현재 44조원 넘게 팔렸지만 정작 증권업계에 내세울 만한 해당지역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요 투자대상 국가의 금융시장 동향 등을 담은 기초적인 '컨트리 리포트'조차 없는 실정이다. 증시 상황이 바뀐 뒤에야 투자방향을 제시하는 '뒷북 보고서'가 나오기 예사고,장기투자해야 하는 펀드 투자의견을 한두 달 만에 매수와 매도를 오락가락하는 '말바꾸기'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마치 '성장통'을 겪은 청소년처럼 키는 훌쩍 컸지만,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전체적으로 신체가 부실해진 꼴과 흡사하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펀드를 팔기만 하는데 치중했던 탓에 시장이 이같이 불균형한 상황에 빠졌다며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를 하나둘씩 갖추는 노력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해외펀드 보고서는 '외화내빈'


해외펀드는 펀드시장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기 있는 투자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브릭스펀드는 2007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브릭스펀드 설정액은 2007년 6월 11조7000억원에서 2008년 6월 46조6000억원으로 급증,정점을 이루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가세가 주춤해져 이달 현재는 44조7000억원에 이른다. 2년 사이에 2.8배 이상 늘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러시아펀드 투자자금은 이 기간에 867억원에서 1조6000억원으로 17배 넘게 급증했다.

반면 업계의 투자가이드와 분석력은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주요 증권사들은 지난 2~3월 러시아증시가 급락하자 러시아펀드를 동유럽펀드와 함께 환매해 비중을 줄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당시 동유럽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져 이들 펀드 가입자는 많게는 투자금의 90%까지 손실을 본 상황이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뒤인 5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되며 러시아와 동유럽의 디폴트 위험이 점차 사라진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하자 주요 증권사들은 자세를 바꿔 러시아펀드에 대해 '투자비중을 늘리라'는 의견을 쏟아냈다.

이 펀드에 가입해 있는 한 투자자는 "펀드에 장기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증권사들이 두 달 만에 '팔자'에서 '사자'로 투자의견을 정반대로 뒤집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도펀드도 비슷한 시기에 이 같은 '뒷북보고서'가 쏟아져 눈총을 받았다.

이는 무엇보다 증권사 펀드리서치센터나 자산전략팀 내에 해당지역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펀드리서치팀장은 "국내 증권사에서 러시아 인도 동유럽 브라질 등에서 유학이나 근무를 했던 경험이 있는 애널리스트는 한 명도 없다"고 실토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외신과 경제신문 등을 통해 해당 국가의 경제사정을 들여다보고 각국에서 발표하는 경기지표와 주가지수 등을 참고해 관련 보고서를 내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브릭스지역 보고서는 양적으로 적지 않게 나오지만,투자지침이 될 만한 건 찾기 어려워 '외화내빈'에 그치는 실정이다. 실제 창구에서 펀드를 파는 판매사들도 역할이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전체 펀드의 39%를 판매한 은행들은 펀드 리포트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

◆업계 정보 공유 시스템 필요


이에 따라 자산운용사와 판매사들이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정 잔액이 6660억원에 불과한 중동 · 아프리카펀드에 대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모든 국내 증권사들이 전문가를 데려오거나 파견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에서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은 "증권사나 은행마다 지역 전문가를 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우선 주요 펀드판매사 간 협의를 통해 지역전문가를 회사별로 분담해 두고 관련정보를 공유하면 이중 삼중으로 드는 비용을 아끼면서도 양질의 정보를 투자자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금융투자협회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자본시장연구원 등이 지역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현지 파견을 통해 생산한 양질의 '컨트리 리포트'를 회원사인 증권사와 자산운용협회에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때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펀드를 평가하는 인프라도 이번 기회에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펀드 평가 업무는 현재 제로인 한국채권평가 모닝스타 등 평가사들이 주로 맡고 있다. 이 중 지난 3월 한국펀드평가를 흡수합병한 제로인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작년 매출이 다른 업무까지 합쳐도 80억원 수준에 그치는 등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펀드평가사들은 주로 펀드를 분류해 국민연금과 삼성생명 등 기관투자가에 자료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낸다. 그렇지만 수수료는 1bp(1bp=0.01%) 정도여서 1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기관투자가로부터 수주를 했더라도 매출은 1억원에 그치는 실정이다. 최상길 제로인 전무는 "기관투자가를 통해 수익의 대부분이 창출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펀드 평가시장의 영세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펀드평가가 제대로 돼야 펀드시장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