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가 살아야 증시가 산다] 수익은 운용사가 내는데 보수는 판매사가 2배 챙겨
펀드시장을 키우려면 기형적인 펀드 보수체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자산운용사들이 자금을 잘 굴려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한 만큼 투자자가 가입할 때 내는 수수료와 별도로 매년 서비스 대가로 지급하는 보수는 당연히 운용사가 판매사보다 많아야 하지만, 현재는 거꾸로 판매사가 2배 정도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 펀드 투자자금인 순자산에 비해 투자비용이 미국 영국 등 선진국보다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운용사들이 판매를 은행과 증권사 등에 의존하는 관계로 보수 책정에서 이들 판매사의 입김이 훨씬 세게 작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업계에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번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사정에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왜곡된 펀드 보수체계를 개편하고 투자비용을 낮추려면 다른 판매채널을 만들어 판매시장에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국은 아예 판매보수 없어

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펀드 투자자들이 매년 내는 전체 보수 가운데 판매사 몫인 판매보수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2.7%에 달한다. 2004년 72.3%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주식형펀드의 경우 운용보수는 순자산의 0.747%인 반면 판매보수는 거의 두 배인 1.233%나 된다.

영국은 아예 판매보수가 없고 미국도 비중을 1% 미만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영국에선 투자자들이 펀드에 투자할 때 판매수수료를 딱 한 번 낸다. 지급시기도 가입 당시에 내는 선취형과 만기가 됐을 때 내는 후취형으로 구분된다. 투자기간에 걸쳐 나눠내는 이연수수료를 선택할 수도 있다. 미국은 판매수수료와 함께 매년 판매보수를 받지만 1980년 '12b-1 보수'란 제도를 도입, 순자산의 0.75%를 넘지 않게 제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의 주식형펀드 총보수에 대한 운용보수 비중은 미국이 85%인 것을 비롯 통상 70%를 넘어 우리와는 정반대 구조다.

한국의 높은 판매보수는 투자비용을 올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미국은 펀드 투자비용이 순자산의 0.99%인 데 반해 한국은 주식형펀드의 경우 투자비용이 순자산의 2.03%로 두 배를 넘는다. 1억원을 펀드에 투자하는 데 해마다 100만원 이상 더 비용을 들인다는 얘기다.

이처럼 한국의 판매보수가 이례적으로 높은 것은 자산운용사들이 독자적인 판매 채널과 조직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펀드를 팔기 위해선 은행과 증권사 등의 판매망을 이용해야 해 투자자금을 많이 유치하려면 운용보수를 낮게 받고라도 판매보수를 늘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운용사들이 대부분 은행 · 증권사의 자회사여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는 사정도 작용한다.

또 판매사들이 펀드를 팔고 난 이후 특별한 관리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수익을 내건 말건 투자기간 내내 계속 보수를 챙기는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판매보수를 받는 명목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신인석 중앙대 교수는 "판매보수를 받을 땐 어떤 서비스에 대해 얼마를 받아가는지 투자설명서에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펀드 성과에 대한 문의 · 응대,투자자들의 재무상황 변화에 따른 사후관리,시장상황 변화에 따른 펀드 조정 등의 서비스 내용과 그에 대한 비용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펀드슈퍼마켓 등 판매 채널 늘려야

펀드 보수체계를 바꾸려면 무엇보다 판매 채널을 다양화해 판매사 중심으로 돼 있는 시장의 불균형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온라인펀드 판매 시장을 활성화하고 여러 회사 펀드를 비교해 고를 수 있는 '펀드슈퍼마켓'과 일정 수수료를 받고 펀드 투자자문 및 판매를 하는 독립재무설계사(IFA) 등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서비스를 받고 그에 부합하는 비용만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보수체계 개편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펀드판매망 다양화를 요청했지만 제도 마련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금융감독당국은 IFA 도입을 골자로 한 '금융상품판매전문업법' 제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IFA의 불완전 판매를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IFA는 펀드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며 "관리감독과 교육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오히려 불완전 판매는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앞으로 판매보수를 지속적으로 줄이거나 없애 판매수수료가 중심이 되도록 체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신 판매사들이 투자 서비스나 계좌관리 서비스 등을 고급화해 '컨설팅 수수료' 방식으로 대가를 받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