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펀드매니저 이름을 딴 실명펀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2월에 나왔던 '박현주 뮤추얼펀드1호'가 효시다. 외환위기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300선 아래로 폭락하자 주식형펀드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자산운용사의 신뢰도 추락해 이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삼성증권을 통해 판매된 '박현주펀드'는 투자자들의 비상한 관심과 기대 속에 상한가를 쳤다. 출시 당일 한도인 500억원이 모두 팔려나갔고 1년 후에 95%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상환됐다. 이 같은 성과로 박현주펀드는 5호까지 나왔고 각각 1년 만에 87~114%의 높은 수익률을 올려 미래에셋금융그룹이 국내 최대의 비은행 금융회사로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당시 '박현주1호'라는 실명 펀드가 나와 하루 만에 모두 팔려 나간 것은 물론 95%라는 고수익을 올리자 다른 실명 펀드들이 잇따라 나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이후 KTB자산운용의 '장인환펀드'를 비롯해 한국투신의 '장동헌펀드', 현대투신의 '강신우펀드',LG투신의 '박종규펀드',동양오리온투신의 '김영수펀드'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실명 펀드를 운용했던 매니저들은 지금 얼라이언스번스타인(장동헌) KTB자산운용(장인환) 한국투신운용(강신우) 현대인베스트먼트(박종규) 등의 CEO(최고경영자) 및 CIO(최고투자책임자)로 있으면서 한국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주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실명 펀드는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이 꺼지면서 증시가 폭락하면서 사라져 갔다. 그러다 증시가 점차 회복된 2003년에 한국투신운용(그랜드슬램에이스,TAMS그랜드슬램)이 펀드보고서에 매니저란을 따로 만들어 '이형복' 매니저를 소개하는 방식이 새로 등장했다.

이후 DJ정부 때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진대제장관의 이름을 딴 '진대제펀드'를 비롯 '장하성(고려대 교수)펀드''고승덕(현 한나라당 의원)펀드' 등이 나와 실명 펀드의 계보를 이었다.

그렇지만 펀드의 법적 명칭은 따로 있고 주로 마케팅 수단으로 쓰였다. 지금도 펀드의 정식 명칭은 물론 별칭에도 매니저의 실명을 쓰는 것이 사실상 통제받고 있다. 금융당국이 투자자 혼란을 우려해 실명 펀드를 자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측은 "펀드매니저나 유명인의 이름을 펀드에 붙이면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어 정식 명칭뿐 아니라 별칭으로 광고 · 홍보하는 행위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