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대규모 선물 매도로 26일 코스피지수가 1370선으로 후퇴했다.

북한의 핵실험과 이에 대응한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선언으로 증시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관측으로 매수세가 위축된 가운데 선물 매도 물량이 쏟아지자 선물가격이 현물(주식) 가격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 뚜렷해졌다.


전문가들은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외국인이 미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 가능성과 다음 달 공매도 재개 등을 의식해 선물 매도 공세를 높일 경우 주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선물을 매매하는 외국인은 투자기간이 짧고 투기적 성향이 강한 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28.86포인트(2.06%) 급락한 1372.04로 마감해 4일 연속 조정을 받았다. 전날 4700억원에 달했던 프로그램 순매도 규모는 5600억원대로 급증해 시장을 압박했다. 그나마 개인이 3000억원 이상 순매수하며 물량을 소화해 추가 하락은 면했다.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1조1200억원 정도를 순매도해 프로그램 매도를 촉발했다. 외국인 선물 순매도가 1조원을 넘긴 것은 지난 14일 (1조1242억원)에 이어 올들어 두 번째다. 선물 매물이 쏟아져 선물값이 급락하자 가격이 싸진 선물로 갈아타기 위해 현물 주식을 파는 프로그램 매매가 급증했다. 이는 다시 코스피지수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형적인 '왝더독' 현상이다.

외국인의 선물 대량 매도는 앞서 매수했던 물량을 청산하기 위해 내놓은 환매 물량보다는 신규 매도 주문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청산되지 않은 물량인 미결제 약정도 함께 늘어난 것을 보면 외국인이 신규로 매도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의 선물 대량 매도는 △단기 급등에 대한 피로감 △대북 관계 악화 △GM 파산 가능성 고조 △공매도 시행에 따른 불확실성 증폭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외국인이 가격 부담을 느끼던 차에 북핵 문제가 불거지자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선물을 집중 매도했다"며 "다음 달 공매도가 재개되면 대형주가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도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 가능성과 우리 정부의 강력 대응 방침 등으로 외국인이 약세장에 베팅했다"고 분석했다.

선물시장의 영향력이 커진 것은 현물시장의 수급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탓도 있다. 특히 그동안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여 왔던 외국인은 지난 21일부터 하루평균 순매수액이 1200억원에 불과할 정도로 매수 강도가 월초에 비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안승원 UBS증권 전무는 "글로벌 증시 전반이 추가 상승을 위한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외국인도 쉬어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김주형 동양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영국의 신용등급 하향 등 부정적인 해외 변수에 북핵 문제와 같은 내부 악재가 겹치자 외국인도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3개월 가까운 상승으로 부담이 커진 가운데 26일(현지시간) 발표될 미국의 5월 소비자기대지수 등 실물경기의 호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경기지표를 확인하고 가자는 심리가 강해진 데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선물 매도 공세가 지속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많아 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승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하루 만에 물량을 많이 쏟아낸 데다 선물시장엔 단기 세력이 많아 당분간 순매수와 순매도를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일 것"이라며 "코스피지수가 하락세로 방향을 잡지 않는다면 일방적인 매도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해영/강지연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