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부터 비금융주에 한해 공매도가 허용된다. 하지만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제한은 당분간 유지된다. 또 자본시장법에 따라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 파는 무차입 공매도(네이키드 숏셀링)도 계속 금지된다.

금융위원회는 증시가 안정을 되찾고 있어 공매도를 해제할 여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을 비롯한 증시 일각에서는 성급한 공매도 규제 해제가 주식 시장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8조원 넘게 주식 산 외국계 요구 수용

금융위원회는 비금융주에 대한 차입공매도(커버드 숏셀링)를 내달 1일부터 허용하겠다고 20일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주가 폭락의 요인으로 지목돼 지난해 10월부터 전면금지됐던 공매도가 9개월 만에 제한적으로 재개되는 셈이다.

금융위는 공매도 해제 조치의 배경으로 △시장안정 △국제적인 공매도 규제 해제 흐름 △제도 개선 △공매도의 긍정적 효과 등을 들었다. 코스피지수가 다시 1400선까지 상승하고 주가 변동성도 공매도를 제한하기 전 수준으로 낮아져 여건이 갖춰졌다는 설명이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이 최근 공매도를 다시 허용한 것도 감안했다.

앞서 이달 초 금융감독원은 '공매도 업무처리지침'을 마련해 매입한 주식보다 차입 주식이 많은 상태에서 매도하는 경우를 공매도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기준을 정했다.

하지만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제한 조치는 당분간 유지키로 했다. 금융시장 상황이 호전됐지만 여전히 자본확충,부실자산처리 등 금융기관의 건전성 제고 노력이 지속되고 있는 점이 감안됐다.

정부는 이번 공매도 해제 조치를 놓고 상당히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규제가 너무 오래 지속돼 원론적으로는 풀어야 하지만 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주까지만 해도 금융위 담당과에서조차 '공매도 해제는 시기상조'라며 해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 며칠 전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해제 방안을 알아보겠다'고 언급하면서 급진전됐다.

업계 한 전문가는 "한국 증시에서 주식 매수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공매도 허용 요구를 무시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 들어 장기 성향의 외국인투자자를 중심으로 8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인 상황에서 공매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것이 장차 있을지도 모를 이들의 갑작스런 시장 이탈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같다는 분석이다.


◆주가 조정 빌미 우려도

정부가 결단을 내렸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개인을 비롯해 공매도 해제에 부정적인 투자자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대론자들은 "특히 업틱룰을 비롯한 각종 공매도 관련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공매도 허용은 주가 변동성을 키우고 특히 주가 하락기에 폭락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연초 실시한 금융감독원의 공매도 실태 조사에서 전체 증권사의 71%가 관련 규정을 위반했고,업틱룰 위반금액만 8조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따라 공매도 해제의 증시 영향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는 등 증시 체력이 강화돼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진단했다. 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감시 시스템이 있다고 하지만 고의적인 규정위반에는 사후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뿐 완벽한 사전 통제는 어렵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


[ 용어풀이 ]

◆무차입 공매도(네이키드 숏셀링)=보유하고 있지 않는 주식을 미리 파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는 허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금지된 거래 방식이다.

◆차입 공매도(커버드 숏셀링)=한국예탁결제원이나 한국증권금융 등에서 빌려온 주식을 미리 파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공매도만 허용하고 있다.

◆업틱룰(up-tick rule)=공매도 때 장중 매도 호가를 직전 체결가 이상으로 제시하도록 제한하는 규정.미국 유럽에는 없지만 한국에서는 공매도로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