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CMA 카드ㆍ신상품 출시 경쟁
펀드가입 불편ㆍ신사업 인가지연 등 개선책 시급

자본시장의 무한경쟁을 이끌어내고 혁신적인 금융상품을 탄생할 수 있게 한 자본시장법이 4일로 시행 석 달을 맞는다.

증권업계는 그동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신용카드 출시를 통해 은행권과 본격적인 고객 쟁탈전에 들어갈 채비를 해왔으며, 다양하고 혁신적인 신상품 출시 경쟁을 벌임으로써 국제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하려는 꿈을 착실히 키워왔다.

금융권이 자본시장법을 지렛대로 삼아 대도약을 하려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자세로 신사업 진출이 지연되고 펀드 가입이 까다로워져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등의 일부 문제점이 나타나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증권업계 `신상품 경쟁' 불붙었다.

금융시장 사이의 벽을 허문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은행과의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게 된 증권업계의 최대 무기는 바로 `CMA 신용카드'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CMA 카드를 통한 수시 입출금과 신용카드 결제, 계좌이체, 공과금 납부 등이 가능해지자 증권사들은 은행 계좌 고객을 CMA로 빼앗아오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대부분 증권사들이 금융결제원 지급결제망 참가와 자체 전산 프로그램 준비를 거쳐 이르면 7월부터 CMA 신용카드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동양종금증권은 한 발짝 더 나아가 전국 161개 지점은 물론 핵심 상권, 대규모 아파트 단지, 교통요지 등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설치해 은행권과 한판 대결을 벌이겠다는 전략을 펴고 있다.

금융상품의 범위를 거의 무제한으로 넓힌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증권사 간 신상품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탄소배출권,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등과 연계된 파생상품연계증권(DLS)을 내놓은 것을 비롯해 유가, 금, 통화 등 혁신적인 기초자산에 기반을 둔 금융상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삼성증권의 경우 변동성을 코스피지수 수익률의 1.5배로 키운 `레버리지드 인덱스 펀드'를 준비하고 있다.

금융기관 간 벽이 허물어지면서 은행과 증권, 보험 등의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복합 금융상품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하나의 통장으로 은행 거래와 증권 거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KB 플러스타 통장'을 내놓았으며, 신한금융그룹은 은행 계좌에서 국내 주식은 물론 해외 주식 거래까지 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최근 선보였다.

하지만, 자본시장 간 칸막이 허물기에 가장 필요한 신사업 진출은 더디기만 한 형편이다.

금융당국이 신사업 인가 시 시장 리스크가 작은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인가하고, 신사업을 인가하더라도 당분간 신설보다는 기존 회사의 업무 추가에 비중을 둔다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 시행에 맞춰 집합투자업과 선물업 진출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던 일부 증권사는 비판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자본시장법의 취지 자체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의 육성에 있는데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은 채 그러한 취지가 달성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 펀드 판매 위축에 현장 위기감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자본시장법 시행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펀드 가입 절차가 무척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자본시장법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 펀드 판매사가 고객의 투자목적, 자산규모, 투자경험 등의 정보를 확인해 고객의 투자성향을 분류하고 나서 그 성향에 맞는 상품만 권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는 고객의 투자성향을 안정형, 안정추구형, 위험중립형, 적극투자형, 공격투자형의 5단계로 분류해 해당 고객의 투자성향보다 위험도가 높은 상품은 권유를 금지한 것이다.

투자성향 파악과 투자자정보확인서 작성 등에 30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일쑤여서 소비자는 물론 금융기관의 일선 담당자들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신반포지점의 이준희 고객지원팀장은 "투자자 보호도 좋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불편하다고 하시는 고객들이 많으며, 표준투자권유준칙 자체에도 업계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에 대한 증권사 일선 창구의 불만은 갈수록 위축되는 펀드 판매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2월 4일 자본시장법 시행 후 지난달 28일까지 주식형 펀드에서는 2천970억원의 돈이 빠져나가 3조2천164억원의 돈이 들어왔던 지난해 같은 기간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주식형 펀드 판매의 위축은 최근 주식투자자들의 직접투자 선호 경향에도 원인이 있지만, 자본시장법 시행 후 펀드 가입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워진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일선 담당자들의 인식이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 강화라는 자본시장법의 취지를 살리려면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금융당국이 업계의 불만과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 한다면 자본시장법은 조기에 뿌리를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증권 강동지점의 김성도 주임은 3일 "자본시장법 시행 후 석 달이 지나면서 고객들도 투자권유준칙에 많이 익숙해졌고, 그 취지에 대해 잘 설명하면 고객들도 수긍하고 필요성을 공감한다"며 자본시장의 장래를 밝게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