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증권가의 화제는 개인투자자들의 공격적인 '주식 쇼핑'이다. 개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달 10일부터 24일까지 11거래일 연속 순매수하며 1조7800억원어치의 주식을 쓸어 담았다.

연초 박스권에서 눈치를 보며 사고 팔기를 되풀이하던 패턴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3월 초 시작된 반등장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자신감이 붙은 개인들이 '고'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기관이 순매도로 일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은 외국인과 함께 강력한 매수 주체로 떠올랐다.

개미의 힘은 각종 통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4월 들어 유가증권시장의 개인 거래 비중은 평균 66%로 2005년 12월 이후 월간으로 3년4개월 만의 최고 수준이다. 코스닥시장에서는 개인 비중이 90%를 넘나든다. 개인들이 증권사에 맡긴 고객예탁금은 작년 말 9조원대에서 올 들어 6조원 이상 급증했고 이달 15일에는 16조원을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증권사에서 새로 개설한 증권 계좌 수는 3월 한 달간 16만개에 달했고 4월에도 급증세는 계속되고 있다.

신규 상장하는 공모주를 손에 넣으려는 개인 투자자들의 열기도 뜨겁다. 에이테크솔루션(1496 대 1) 우림기계(468대 1) 등 최근 청약을 받은 공모주 경쟁률은 수백 대 1을 가볍게 넘어섰다. 김기권 대우증권 명동지점장은 "공모주 청약이 있는 날이면 직원들이 점심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고객들이 장사진을 친다"고 전했다.

이 같은 개인의 '화려한 복귀'가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증시 분석가들은 양날의 칼과 같다고 지적한다. 갈 곳 없는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로 물꼬를 트면서 추세적인 반등을 뒷받침할 것이란 기대와 동시에 단타에 치중하는 개인들이 활개를 칠 경우 시장 변동성이 커져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저금리에 '앵그리 머니' 가세

저금리 기조 정착이 개인투자자들을 증시로 불러들인 첫 번째 이유라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의 정책금리가 연 2%까지 떨어지면서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에 접어들었다. 저금리는 주식 투자의 매력을 키워 800조원에 육박하는 단기 부동자금 중 일부가 증시로 방향을 잡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금리의 하향 안정화로 국고채 3년물과 신용등급 'AA-' 회사채와의 스프레드(금리 차이)는 연초 4%포인트에서 최근에는 1.8%포인트대로 좁혀졌다.



지난해 펀드를 비롯한 간접투자 시장에서 개인들이 좌절을 겪었던 경험이 직접투자를 부추긴 원인이란 분석도 있다. 이승우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를 '앵그리 머니(angry money)'라고 표현했다. 펀드 손실로 화가 난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올 들어 환매가 늘면서 5조원 가까이 급감했다. 개인들이 펀드를 환매한 돈으로 위탁계좌를 열고 직접 손실 보전에 나섰다는 얘기다.

국내 주식형펀드는 지난 23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평균 22%의 손실을 입고 있다. 이번 반등장에서 개별 종목 장세가 펼쳐지면서 주가가 50% 이상 급등한 종목이 속출하는 것을 목격한 개인들이 과감하게 투자에 나선 것이다. 심재엽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펀드 가입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차라리 직접투자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투자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펀드 불신의 시대'가 개인들을 증시로 불러들인 셈이다.

◆기관 · 외국인에 비해 성적은 부진

적극적인 매수에도 개인들의 수익률은 아직은 부진한 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증시가 반등을 시작한 지난달 3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유가증권시장의 개인 순매수 상위 20개 종목의 평균 주가상승률은 21.9%로 조사됐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33.1%)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반면 외국인은 35.4%로 평균 이상은 했고 기관은 54.5%로 수익률이 가장 좋았다.

개인 순매수 종목 중에선 이 기간에 하이닉스(104.5%) SK네트웍스(77.7%) LG디스플레이(35.9%) 등의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KT&G(-7.9%) 유한양행(-7.3%) KTF(-2.8%) 등은 오히려 뒷걸음질치며 평균을 깎아먹었다. 이에 반해 기관이 집중 공략한 엔씨소프트 동양종금증권 금호석유 등은 같은 기간에 100% 이상 급등했다. 조완제 삼성증권 연구원은 "단기 급등장에서 변동성도 함께 커져 개인들이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타매매 통한 변동성 심화 우려

개미들의 '컴 백'이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라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개인의 영향력이 커지면 증시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주식 보유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거래대금을 고객예탁금으로 나눈 예탁금 회전율은 3월 말 50%에서 이달 22일에는 76%까지 뛰어 올랐다. 개인들의 단타매매가 늘면서 손바뀜이 잦아진 탓이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4월 들어 장중 변동성이 상승 추세로 접어들었으며 특히 개인 비중이 큰 코스닥시장의 가격 변동폭이 커지고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개인은 가격이 싼 중소형주를 선호하기 때문에 대형주가 주도하는 강한 반등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상승세의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개인들의 외상거래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낙폭 확대를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개인 거래대금 중 신용융자와 미수금 비중은 최근 20% 미만으로 작년 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신용 및 미수거래 합계는 작년 말 1조6000억원에서 최근 3조2000억원대로 2배가량 증가했지만 이 기간에 거래대금도 비슷한 비율로 늘어 전체 비중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절대금액으로는 증가 추세여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국인이 차익을 실현하며 갑자기 빠질 경우 개인들만 상투를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류용석 현대증권 연구원은 "주가가 단기 급락할 경우 담보로 잡은 주식 가치가 부족해 반대매매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위험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