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국내 금융시장을 잔뜩 긴장하게 했던 '3월 금융위기설'이 춘풍(春風)에 날아가고 금융시장에는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코스피 지수가 우여곡절 끝에 1200선을 회복하면서 본격적인 추세전환에 들어간 것 아닌냐는기대도 나오고 있다.
외환시장 분위기도 급변했다. 지난 2월 폭등하던 원달러 환율은 급락세를 걱정할 정도로 내려앉기도 했다.

이렇듯 대표 금융지표들의 급격한 변화를 두고 '경기가 바닥을 친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융지표와 실물경제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이다.
특히 미국 대통령 직속 자동차 태스크포스가 최근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제출한 구조조정 계획을 거부하고 두 회사의 파산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안심하기 힘든 4월'이 예상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한국의 대외 채무가 대외 채권에 비해 많은 데다 단기 외채 비중이 큰 채무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3월 위기설과 같은 각종 위기설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또다시 ‘설’로 끝난 3월 금융위기

3월 위기설은 외국인 투자자금 대량 이탈 등으로 외환위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게 핵심이었다. 특히 일본 엔화자금 이탈 우려로 엔화대출을 받은 많은 중소기업과 금융권에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3월 첫 거래일인 지난 2일에만 환율과 주가가 크게 흔들렸을 뿐,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외국인은 투자자금을 빼가기는 커녕 이달 들어 코스피시장에서만 1조3507억원어치나 주식을 사들였다.

3월초 환율이 급등하고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반등할 때만 해도 지난해와 같은 금융위기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지만 외환당국의 개입과 미국 증시의 강세, 3월 무역수지 흑자폭이 36억8000만달러를 기록하는 등 호재가 겹치면서 증시는 폭등했다.

코스피지수는 31일 현재 1206.26으로 2월말 1063.03보다 13.4% 이상 상승했다. 이런 상승 폭은 월간 기준으로 2001년 11월(20% 상승) 이후 8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3월 위기설'이 기우에 그치면서 원달러 환율도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 올 들어 1월과 2월 8.7%, 10.0%씩 상승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150.5원(10.8%) 하락했다.

◆추세전환은 아직 시기상조
금융시장에 완연한 봄기운이 감돌고 있는 것과 달리 경제주체인 소비자들의 심리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는 84를 기록, 오히려 전달보다 1p 내려갔다. 이 지수가 100 미만이면 앞으로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고용불안과 환율상승으로 소비자들이 실질소득 감소를 예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가 풀어놓은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이 아직 실물로 제대로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협의통화(M1) 증가율은 8.3%를 기록할 정도로 증가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은행 자금이 실물경제로 번져나갔느냐를 확인할 수 있는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전달대비 1.1%p 떨어진 12.0%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힘을 잃어가는 추세다. 한은이 돈을 대규모로 풀었음에도 '돈맥경화' 현상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다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다.

결국 경제지표만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은의 대규모 통화공급이 기대했던 효과를 못 내고 향후 인플레이션만 자극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한은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한다면 경기는 다시 곤두박질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근 증시 급등은 말 그대로 유동성 확대 정책에 따른 '유동성 장세'일 뿐, 실물의 체력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경기 모멘텀의 기저에는 유동성 공급이 자리했다"며 "당국이 유동성을 흡수한다면 경기가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긴 시간을 두고 문제가 하나씩 터지면서 경기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해나갈 가능성이 높다"며 "장기간 이 과정을 거쳐야 경기 회복을 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말해 정부의 각종 지원 사격으로 금융지표가 얼핏 호전되는 듯 보이지만 그와 상관 없이 실물에 내재된 문제는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터져나올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 외환위기 이후가 그랬다. '구조조정이 마무리됐다'는 정부 발표와 상관없이 1998년에는 은행, 1999년에는 대우그룹, 2000년에는 벤처버블사태가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경제성장률은 정부주도 정책으로 반짝 성장하더라도 실물에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문제가 터져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용택 유진투자증권 매크로팀장은 "개인적으로는 내년 1, 2분기를 단기 고점으로 본다. 분기성장률 6%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큰 의미를 둘 수치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정 팀장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7% 가까운 성장후퇴를 겪은 후 다음해 10% 성장했다"며 "기저효과가 사라진 후에는 다시 성장률이 푹 꺼지는 추세가 상당기간 지속됐다"고 평가했다.

◆금융 체질 강화가 위기설 잠재울 수 있어

3월 위기는 물러갔지만 앞으로 또다른 위기설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금융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대외 채무가 대외 채권에 비해 많은 데다 단기 외채 비중이 큰 채무 구조를 개선해야한다는 것.

지난해 말 기준 대외 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기외채가 40%, 유동외채(단기 외채+1년 내 만기도래 장·단기 외채)는 51%나 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외국과의 통화스와프 규모 확대와 만기 연장, 단기 외채의 장기 외채 전환, 외평채 발행 등을 동시에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특히 금융기관의 외환 건전성 지도를 강화해 총외채에 단기 외채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지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3월 위기설을 맞아 허둥대는 정부 '뒷북 대응'에서도 드러났듯 국내외 금융시장의 모니터링을 강화하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일도 중요하다.

김종수 NH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85% 이상으로 관리하는 금융기관의 외화부채 대비 외화자산 비율의 하한선을 더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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