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과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금융상품의 상표권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18일 ‘슈퍼스텝다운 ELS(주가연계증권)’의 상품명에 대해 특허청에 상표등록출원을 신청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 달 선보인 ‘슈퍼스텝다운 ELS'는 한달 여 만에 900억 가까운 자금이 모이는 등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때문에 다른 증권사들이 ‘슈퍼스텝다운’을 표방하며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며 상표등록 출원 이유를 설명했다. 다른 증권사들이 상표를 도용하고 있어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증권이 문제로 지적한 회사는 우리투자증권과 대신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 3개사다.

삼성증권은 우리투자증권이 지난 17일부터 시작해 19일까지 판매하는 ELS 상품을 '슈퍼스텝 다운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신증권과 굿모닝신한증권은 상품이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소개자료 등을 통해 '슈퍼스텝다운'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증권의 상표등록으로 다른 회사에서는 '슈퍼스텝다운’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우리투자증권을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증권의 억지주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상품구조는 업계 통용인데 특허가 가능한가

삼성증권이 지난달 내놓은 '슈퍼스텝다운 ELS'는 기존의 스텝다운형 ELS보다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지난해 10월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대부분의 '스텝다운형 ELS'는 두 기초자산이 미리 정해진 주가 레벨(배리어)이 깨졌다. 원금손실은 물론이고 70~80% 손실까지 입은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렇지만 삼성증권의 '슈퍼스텝다운 ELS'는 투자 기간 중 하락 배리어(Knock-In Option)를 없앤 상품이다. 수익 지급의 기준이 되는 기준주가를 만기에 큰 폭으로 낮췄고, 이 점이 인기 요인으로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하락배리어를 없앤 점은 삼성증권이 처음"이라고 인정했지만 "금융상품은 어떤 형태든 모방상품이 나오기 마련이고 이러한 정서는 어느정도 통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증권은 "구조에 대한 특허 또는 배타적상품권 주장이 아니다"라며 "'슈퍼스텝다운'이라는 네이밍(naming)에 대한 브랜드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슈퍼 스텝다운은 '슈퍼+스텝다운' 아닌가

슈퍼(super)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영어 단어이며, 스텝다운은 ELS상품구조의 이름이다. 따라서 슈퍼스텝다운의 상표권도 말이 되지 않는다는 업계의 의견이다.

삼성증권은 이에 대해서도 "현대카드의 '슈퍼콘서트'도 특허청에 상표 등록이 되어 있고 효성의 '슈퍼셀'도 마찬가지"라고 예를 들고 "'슈퍼'라는 말에 'Knock-In'의 일반적인 의미는 없기 때문에 고유명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실 ELS는 외국계 증권사의 금융상품이다. 외국계 증권사는 ELS 워런트를 헷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내 증권사들 고유의 상품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삼성증권 또 "외국계 상품이긴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와 함께 새로운 상품구조를 짜낸 것"이라며 "2월 초에 내놓은 뒤 인기가 높으니 다른 회사들도 부랴부랴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업계 관계자는 "삼성증권은 ELS 분야에서 메이저급은 아니다"라며 "오랜만에 히트상품을 내놓으면서 상표권 문제를 들고 나온 것 같다"고 추측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상표권 문제들이 불거지는 걸 보니 시장이 살아난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3월들어 증권사별로 조기상환되고 있는 ELS 상품이 줄을 잇고 있다.

◆금융상품 상표권 분쟁 사례들

금융상품에 대한 상표권 문제는 종종 불거져왔다. 우리은행이 2007년 출시한 '우리V카드'는 당시 현대카드가 상표권 출원 후 등록을 마친 '현대카드V'와 이름이 비슷하다며 문제가 된 바 있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이 같은 문제에 휩쓸린 적이 있다. 미래에셋의 대표적인 주식형 적립식펀드인 '미래에셋 3억만들기 주식형펀드'는 2003년 1월 출시된 랜드마크자산운용의 ‘랜드마크 1억만들기 주식형펀드'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두 사례 모두 실제 분쟁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우리카드와 미래에셋에게 그럴듯한 '모방'이라는 질타도 보냈가.

하지만 '현대카드V' 보다 나중에 출시한 '우리V카드'가 히트를 쳤다. 지난해 8월에는 '역대 최단기간 가입고객 300만명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랜드마크자산운용은 2007년 6월 ING자산운용에 합병되고 부진을 겪는 사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3억만들기펀드'는 대표적인 적립식펀드로 자리잡게 됐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