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안갯속으로 빠질수록 투자전략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투자자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작년에 '고(GO)'를 외치던 증시 전문가도 금융위기가 터진 후 모두 신중론 내지는 비관론으로 입장을 바꿨다. 요즘 같은 시기에 투자전략가들의 전망을 들으면 들을수록 투자자들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비관론이 또 다른 비관론을 부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서명석 동양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최장수 투자전략가로서 솔직하게 위기 상황에서의 전망은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서 센터장은 1990년 동양증권에 투자전략팀이 생긴 뒤 대리부터 현재 임원까지 투자전략 한우물만 판 국내 투자분석 1세대다.

"투자전략가들이 증시를 전망한다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망이라기보다는 현재까지 있었던 일이나 현 시점에 진행되는 일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보면 전망이란 말을 빌려서 현재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이렇게 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주가 고점에서는 낙관의 소리가 커지고,바닥에서는 비관의 소리가 커지게 마련입니다. "

투자전략가의 전망에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고백이다. 서 센터장은 투자자들이 이 같은 전망의 한계를 선별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투자전략가의 전망이 다 거짓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추세가 진행될 때는 맞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불확실성이 높아진 변곡점에서 발생합니다. 최근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대세 상승이란 전망을 내놓고 싶어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전략가들은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 주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써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

동물적인 감각으로는 증시가 크게 반등할 것으로 예견한 투자전략가도 대부분 '박스권 지속' 내지 '하락세 불가피' 등과 같은 보수적인 전망 보고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점에서는 과열 신호가 나오고,바닥에서는 급등 신호가 감지되게 마련이지만 투자자들은 심리적으로 보수적인 전망치에 억눌려 투자 판단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때나 지난해와 같이 변곡점이 생길 때 주가 전망은 틀리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말이죠.사이클상으로 크게 바닥을 치면 돌아서게 마련이지만 기존 추세를 과신하면서 전망에 오류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

서 센터장은 이런 증시 전망의 구조적인 한계를 역발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의 '청개구리' 시황관은 독특한 이력과 연관돼 있다. 그는 다른 투자전략가와는 달리 투자전략과 함께 운용까지 책임졌던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회삿돈 수백억원을 운용하는 상품운용팀장을,IT(정보기술) 버블 직후였던 2003년부터 2004년까지는 랩운용팀장을 각각 투자전략팀장과 병행했다. 특히 상품운용팀장 시절 2001년 미국에서 9 · 11테러가 터진 직후 비관론이 난무했던 때 혼자 대세 상승을 외치며 주식을 대거 매입해 큰 수익을 올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그는 4~5월 매우 강한 상승장이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올해 국내 경기성장률을 플러스로 전망하는 곳이 한 곳도 없지만 저는 플러스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금리를 내리고 유례없이 풀어놓은 자금의 효과가 2분기부터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데이터를 보면 대부분 비관적이지만 순환적으로 바닥에 와 있습니다. 경기를 설명해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인 재고순환지표만 봐도 확실히 바닥권으로 진입해 1분기를 저점으로 2분기부터 돌아설 것입니다. "

또 유동성 장세를 예상하는 근거로 일본 상황을 제시했다. 서 센터장은 "작년 11월에 글로벌 위기가 극단적으로 심화되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본으로 다시 빨려들어가면서 과거 엔화 자금이 몰렸던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세 나라의 통화가치가 급락했다"며 "그러나 일본은 내수 부진으로 기업들이 유례없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도 국민들이 엔화 강세를 이용해 해외로 나가 소비를 늘리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에 결국 엔화 자금이 해외로 다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외국인들도 엔화를 바꿔서 원화에 투자하는 게 이득인 만큼 시장이 약간만 안정을 찾으면 외국인 자금이 엄청나게 국내 증시로 유입될 것"이라며 "전 세계에 넘쳐나는 유동성에 일본 엔화 자금이 합쳐지면서 빠르면 4~5월 폭발적인 유동성 장세가 나타나며 코스피지수가 1500선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올해 말 원 · 엔 환율이 1000원 이하로,원 · 달러 환율은 1100~1200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센터장은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일수록 주어진 데이터보다는 상식을 믿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시장이 추세를 벗어나 변곡점에 들어섰을 때는 경기선행지수나 재고순환지표 같은 경제지표로 큰 흐름을 챙기면서 펀더멘털 분석보다 기술적 지표를 보고 투자 판단하는 게 맞다"며 "역사적으로 성장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성장을 하지 않는 게 아니고 참고 있다가 나중에 더 빠른 속도로 정상을 찾아갈 것이란 의미"라고 강조했다.

"2000년 IT 버블이 터졌지만 우리나라와 미국은 그 이후에 10년간 IT로 먹고 살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장에는 심리적으로 고점에서 매수하게 하거나 저점에서 매도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합니다.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대중과 반대로 움직이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U자형 L자형 주가 패턴을 얘기하고 있지만 과거 급락 후 급등하지 않은 사례가 한번도 없습니다. 이럴 때 승부를 걸지 않으면 큰 기회는 없습니다. "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