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애널리스트 협상주도권 뺏겨
'인력조정+연봉삭감 우려' 긴장감 고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증권업계의 애널리스트에 대한 연봉이나 재계약 협상의 주도권이 바뀌는 등 판도에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해에는 증시 활황과 인력부족 등으로 애널리스트들이 회사를 상대로 주도권을 행사했지만, 올해는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회사가 오히려 인력조정에 나서는 등 상황이 완전 역전되고 있는 것.
그동안에는 스타 애널리스트의 고액 몸값 논란과 우수 인력을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신경전이 연봉·재계약 협상시즌의 화두였던 반면, 올해는 구조조정과 연봉삭감 우려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증권사 "재계약 않겠다" 포문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지난달 27일 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한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 등 총 7명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당사자들에게 통보했다.

이 때문에 이들 7명은 계약이 끝나는 이달 말 회사를 떠나야 한다.

삼성증권은 대부분 주니어급인 이들 7명을 외국계 증권사 출신 인력이나 국내 증권사 출신 가운데 시니어급으로 대체할 예정이며, 일부 인력에 대해서는 사실상 내정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증권도 최근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 2명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나머지 상당수의 증권사는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운동 등을 감안해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경쟁업체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전체 애널리스트 가운데 통상 3∼5% 정도의 인력 조정은 통상적인 것"이라고 밝혀 부분적인 인력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공세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애널리스트에 대한 수요는 줄고, 특히 외국계 투자은행(IB) 출신들이 인력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공급 초과'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계 IB 출신들이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자리를 위협하는 양상까지 일부 보이고 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외국계 증권사의 국내 법인 또는 홍콩법인 출신 인사들이 이력서를 많이 내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를 반영하는 것으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칼자루를 쥔 증권사는 더 좋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인력에 대한 인위적 조정에 나서고 있고,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의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예년에는 애널리스트들이 주도권을 행사했지만, 올해는 완전히 역전됐다"며 "금융위기로 시장이 축소되면서 애널리스트의 상대적 공급과잉 상태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풍부해진 인력풀을 배경으로 일부 증권사들은 이번 기회를 우수 인력을 충원하는 기회로 보고 서두르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해마다 일어나는 애널리스트의 이동폭도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몸값 거품도 빠질 듯
올해는 당연히 몸값 거품도 상당 부분 빠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 상황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달 말까지 소속 애널리스트들과의 연봉협상을 마무리해야 하는 대부분 증권사도 올해는 연봉을 동결하거나 삭감할 태세다.

하나대투증권은 이미 지난해 말 구조조정을 계기로 애널리스트들의 임금을 20% 삭감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증시 위축으로 영업실적이 둔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따라서 올해는 대체로 애널리스트의 몸값이 올라가기는 어렵고, 조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과주의를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적용하겠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예년에는 애널리스트 공급이 모자라 성과주의가 두루뭉술하게 적용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평가를 잘 받으면 연봉이 올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확실히 깎일 것"이라며 "올해는 애널리스트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도 "회사의 순익도 줄어드는 추세여서 올해는 연봉이 전체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상당수 동료가 연봉 삭감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