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속하게 상승하고 있지만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은 위험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할 경우 전략이 노출돼 투기세력에 역이용 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국제 금융시장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인 상황에서 섣불리 외환보유액을 헐어 개입에 나섰다가는 아까운 달러만 축내고 진짜 위기에 몰렸을 때 '실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현 외환보유액 2천억 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의 전개 상황이나 국내 여건을 감안할 때 결코 충분한 '범퍼(Bumper)'는 아니라는 의미다.

◇ 과열 국면이냐 아니냐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경제학장)는 25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직후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는데 현 상황이 그렇게 심각하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며 "일종의 오버슈팅(과열) 국면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구제금융안이 실현되면 금융경색이 해소되면서 상반기 이후엔 금융시장도 빠른 속도로 안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9일 1,381.00원에서 24일 1,516.30원까지 급등했다.

특히 24일 종가는 1998년 3월13일의 1,521.00원 이후 10년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뉴욕 증시가 은행 국유화 논란 등으로 12년 만에 최저치로 급락한 데 이어 코스피 지수가 1,060선으로 폭락하면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김태준 동덕여대 경제경영학부 교수는 "동유럽 문제가 불거지면서 심리적으로 한쪽으로 쏠리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은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유동성이 좋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오버슈팅되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욱 연구위원은 "1,500원에 가까운 환율이 절대적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글로벌 달러 강세나 지정학적인 요인 등을 고려한다면 과연 현 상황을 쏠림 현상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 "적극 개입 자제해야"
전문가들은 그러나 적극적인 시장개입보다 스무딩오퍼레이션을 추천했다.

KDI 김현욱 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현 상황을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라며 "앞으로도 세계 금융위기는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수 있고 달러 강세도 이어질 수 있다"고 못박았다.

즉 당장 힘들다고 외환보유액을 쏟아부어 봤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뿐더러 실탄 소진으로 앞으로 위기 상황에서 더 급박한 국면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경고다.

송재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현 상황에서는 스무딩오퍼레이션을 통해 지나친 급등을 막고 이로 인해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정도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김인준 서울대 교수는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은 추세를 거스르지 않을 정도의 미세개입이어야 한다"며 "전략이 노출되면 그 전략을 역이용하는 신규 수요가 생겨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개입의 경우 시장에 일관성 있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장 개입보다는 통화스와프를 늘리는 등 중장기적인 수요 확충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태준 동덕여대 교수는 "최근과 같이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개입해도 효과가 없다"며 "시장이 진정돼 방향성을 잡은 후에 개입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