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원화 가치가 급락(원.달러 환율 상승)하면서 수입업체나 외화부채가 많은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평균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1,200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경영전략을 짠 대다수 대기업은 환율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80~1,500원까지 치솟았고 원.엔 환율은 1991년 고시환율 집계 이후 처음으로 100엔당 1,600원대로 진입했다.

항공사 등 일부 기업들은 원화 가치 급락으로 올해 적자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엔화대출을 받거나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등에 투자한 수출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몸살을 앓고 있다.

◇ 항공.정유.식품업계 '악!'
24일 금융계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원화가치가 급락하자 항공, 정유, 화학, 철강.금속, 음식료 업종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들은 외화 빚이 많거나 원자재를 주로 수입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손실이 커지게 된다.

우리투자증권이 올해 순이익 추정치를 기준으로 원.달러 환율 100원 상승 때의 이익 민감도를 분석한 결과 항공운송업종의 순이익이 적자 전환할 것으로 분석했다.

또 ▲해상운송업은 22% ▲정유업은 16% ▲철강.금속업은 10% ▲음식료.담배업은 2% ▲의류업은 2% 정도의 순이익이 각각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구매와 관련한 대규모 외화부채를 보유하고 있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그만큼 외화 환산 손실을 입게 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원.달러 환율을 1,200원으로 예상했던 터라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의 최대 피해자로 꼽힌다.

다른 조건은 변하지 않고 평균 원.달러 환율이 100원 상승하면 대한항공의 영업이익은 1천500억 원 줄어들고 외화 환산 손실액은 5천210억 원 발생하게 된다.

같은 조건에서 아시아나의 순이익은 81.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정유업계 역시 원화가치 하락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원유 수입을 위한 달러 부채 규모가 워낙 커 환차손으로 이익을 까먹고 있는 실정이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상승할 경우 SK에너지와 S-Oil의 순이익은 각각 19%, 1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품업계도 마찬가지이다.

식품업계는 통상 환율이 100원 오르면 1천억 원의 환차손을 보게 되는 만큼 애초 전망(1,200원) 비해 추가로 3천억 원 정도의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 엔화 대출 기업 '비명'
대기업뿐 아니라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들도 원화 가치 하락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엔화 대출 기업은 환차손 외에도 대출 금리 급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서울에서 완구 수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50) 씨는 원.엔환 율이 100엔당 800원 수준이던 2006년에 은행으로부터 6천만 엔(5억 원 정도)을 연 2% 금리로 대출받았다.

그러나 원.엔 환율이 지금은 배로 뛰어 대출 원금만 10억 원 수준으로 늘어났다.

작년에 대출 만기를 연장하면서 이자가 연 7%대까지 상승했다.

한 엔화 대출자는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중에서 99% 이상이 원금 손실을 보고 있다"며 "대출이자도 처음 받을 때보다 서너 배 오르는 바람에 부도 위기에 놓인 곳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엔화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대출자가 2천300억 원의 추가 이자 부담을 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엔화 대출 금리는 최초 대출 시의 평균 연 2% 수준에서 최근 5% 중반까지 상승했다.

따라서 엔화 대출자들이 같은 기간 환차손을 빼고도 7천억~8천억 원의 이자 상환 부담이 추가로 생긴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외화대출 규모는 431억 달러로 1년 전보다 11.9% 증가했다.

이 중 엔화 대출액은 전년보다 42.2% 급증한 165억 달러(1조4천980억 엔)로, 중소기업이 전체 차주의 95.7%를 차지하고 있다.

◇ 수출업체도 가시방석
전통적으로 환율 상승 수혜업종으로 꼽히는 전자, 자동차 등 수출업체들도 해외 매출 감소와 외환변동성 확대 등으로 과거처럼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세계 경기 침체로 수요 자체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기더라도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동유럽 국가 부도설 등으로 지난달 현대.기아차가 동유럽 수출을 위해 국내에서 선적한 차량은 모두 6천126대로, 작년 동월보다 무려 64%나 급감했다.

게다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쓰는 부품이 여전히 많아 엔화 강세에 따른 수입 비용도 많이 늘어나 부담이 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거래처에서 환율 요인을 내세우면서 단가를 내리라고 압박을 가하는 바람에 고통을 겪고 있다.

더구나 글로벌시장에서 보호주의 움직임이 조금씩 강화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 달러가 약세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수출기업들도 마냥 고환율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키코'에 가입한 수출기업들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키코 가입 잔액은 37억 달러로, 수출기업들의 손실은 약 3조2천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올 들어 환율이 230원 가량 폭등한 점을 고려하면 키코 업체의 손실은 2개월 새 3천억 원 가량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환율 상승으로 수출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글로벌 수요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에 수출 회복세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