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자산운용사)들이 금융업체가 투자한 사모펀드의 단기 수익률을 맞춰주는 데 급급한 나머지 증시에서 '단타 매매'를 서슴지 않고 있다.


사모펀드에 자금을 댄 은행 농협 수협 금고 등 금융업체들이 장세와 관계 없이 적정 수익률을 올리라고 압박하는 바람에 운용사들이 수시로 주식을 사고팔아 수백억원짜리 펀드의 주식 편입 비중이 며칠 만에 100%에서 제로(0)를 오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126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커진 상황이어서 이 같은 기관의 단타가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투신사들이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지 않고 기관투자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량주를 꾸준히 사들이려면 금융업체들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모펀드 126조 사상최대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사모펀드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126조7506억원으로 작년 1월 말(99조6291억원)보다 27.2% 급증하며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다.

특히 은행 농협 수협 금고 등 금융업체들이 투자한 사모펀드의 비중은 같은 기간 63.3%에서 75.3%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비중 역시 사상 최대 수준이다.

지난해 글로벌 유동성 위기가 심화돼 금융업체들이 연 7~8%의 고금리를 내세워 앞다퉈 끌어모은 자금을 굴리기 위해 사모펀드 투자를 대거 늘렸다는 분석이다. 한 중견 펀드매니저는 "금융업체들로선 경기 침체로 웬만한 기업엔 돈을 빌려주기가 여의치 않고 채권만으론 고객에게 돌려줄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 불안한 증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를 통해 주식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금융업체들이 자신들의 자금이 투입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에 적정한 수익률을 달성하라며 닦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업체들이 투자한 사모펀드 3개를 운용하는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자금을 맡긴 금융업체 담당자들이 '상승장에서는 적어도 시장만큼 수익을 내고 빠질 때도 절대로 손해봐서는 안 된다'며 펀드매니저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의 단타 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100억원짜리 소형 사모펀드의 경우 증시가 상승세를 보이면 서둘러 주식을 다 채웠다가 하락세로 돌아서면 수일 만에 모든 주식을 처분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는 일반 공모펀드의 경우 주식 편입 비중을 80~90%로 유지하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5%포인트 정도씩 줄이고 늘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모펀드 수익률 평가기간 늘려야

최근 일부 중 · 소형주들이 이상급등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사모펀드의 단타성 매매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지수 하락을 방어하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날까지 나흘 연속 코스피지수가 내려 7.15% 하락하는 동안 기관 순매도 규모가 1조2222억원으로 외국인 순매도(4985억원)의 2배를 넘었다.

펀드매니저들은 금융업체들이 사모펀드 수익률 평가 기간을 너무 짧게 잡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1년,3년,5년 등 기간별로 가중치를 적용해 수익률을 평가하는 데 비해 대다수 금융업체들은 분기 단위로 평가하고 두 분기 연속 부진한 수익률을 보이면 가차없이 자금을 회수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단기 평가에 따라 수익률이 나쁜 자산운용사에서 돈을 빼가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단타 매매를 해서라도 일단 수익률부터 맞추는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전언이다.

송성엽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평가 기간을 국민연금 이상으로 길게 잡아야 자산운용사들이 단타 매매에 열중하는 데 따른 시장 불안 등 폐해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금융업체들이 단기 수익률보다는 자산운용사가 당초 제시한 운용 원칙에 맞게 사모펀드를 운용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중장기적 안목으로 평가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