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7일째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조선사의 수주계약 취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외환시장에 새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박 수주가 취소될 경우 선물환을 미리 팔아놓은 조선사와 이를 받아준 은행들이 선물환을 청산하기 위해 달러를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서울 외환시장에 벌크선 선박 발주 취소에 따른 달러 수요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조선사의 수주계약이 취소되거나 연장되면 미리 팔아놓은 선물환에서 오버헤지(과도한 선물환 매각)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며 "이 오버헤지 부분을 없애기위한 환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는 루머가 많아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사들은 지난 2~3년간 선박을 수주하면 환 헤지를 위해 배값에 해당하는 달러를 선물환으로 미리 팔아놓았다. 조선업체의 선박수주 잔량은 2000억달러에 달하며 이 중 90% 이상이 선물환으로 매도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선주가 발주를 취소하면 이 달러를 받지 못하게 되고 조선사는 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여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특히 선물환을 매도할 당시는 환율이 900~1000원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400원대로 높아졌다. 부담이 커진 조선사가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선물환 계약을 받아준 은행이 대신 달러를 사서 메워야 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12월 말 파생상품자산(미결제약정 2000억달러에 대한 평가손)은 약 90조원(1257원 기준)으로 추정되고,이 중 조선업체의 선물환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선박 발주 취소는 아직 중소형 조선사의 벌크선에 머물고 있다.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의 경우 짓는 배가 유조선 드릴십 등 한 척당 5억~10억달러에 달하고 이런 배들은 파이낸싱 계획을 갖고 발주했기 때문에 취소가 어렵다"며 "다만 대신 최근 선박 인도일을 연기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모 조선사는 지난 6일 공시를 통해 한 유럽 선주로부터 수주한 벌크선 1척을 PC탱커 2척으로 변경하면서 계약 만료일을 기존 2010년 6월30일에서 2011년 11월30일로 늦춘다고 밝혔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6개월이 되는 오는 3~4월께 선박금융의 중심인 유럽 금융사들이 선박자금을 계속 공급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때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원 · 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12.50원 상승한 1468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7거래일간 87원 급등하면서 작년 12월5일(1475.50원) 이후 두 달 반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의 주가 급락에 이어 코스피 지수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미국 자동차 업계의 부실 확대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유럽 금융시장 불안 등 대외 악재가 악영향을 줬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