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매물폭탄으로 코스피지수가 1120선으로 급락했다.

외국인은 동유럽 국가들의 디폴트 우려에다 원 · 달러 환율이 28원이나 오르는 등 불안한 양상을 보이자 현물(주식)을 6일 연속 순매도한 데 이어 선물도 4000억원 넘게 팔아치우며 증시를 압박했다. 전문가들은 원 · 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서 외국인의 매도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면서 당분간 외국인 매물이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 선물 매도 올 세번째로 많아

외국인은 17일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776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았다. 이로써 외국인은 지난 10일 이후 6일 동안 8360억원의 순매도를 보였다. 이날은 선물시장에서도 4095억원의 매물을 쏟아내며 베이시스(현 · 선물 간 가격차)를 끌어내려 2562억원의 프로그램 대량 매도를 유발했다.

오전 한때 1150선에서 반등을 시도하던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의 선물 매도로 프로그램 매물이 늘어나며 순식간에 낙폭을 키웠고 결국 48.28포인트(4.11%) 급락한 1127.19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지수 낙폭과 하락률은 지난달 15일(71.34포인트, 6.03%) 이후 올 들어 두 번째로 컸다. 코스닥지수도 19.70포인트(4.89%) 내린 383.17로 하루 만에 400선 밑으로 밀렸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동유럽발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 등으로 원 · 달러 환율이 1450원대로 치솟으면서 외국인 매도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머징 시장의 신용 리스크가 재차 부각되면서 위험 회피 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데다 미국 GM이 결국 파산신청을 할 것이란 전망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추진 등의 악재들이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짓누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증시에서는 은행주를 비롯 대한항공(-7.30%) 아시아나항공(-7.05%) 하나투어(-8.36%) 등 환율 변화에 민감한 종목과 삼성전자(-2.68%) 하이닉스(-8.27%) 기아차(-7.69%) 등 환율 상승으로 수혜가 기대되는 대표 수출주들도 외국계 창구로 매물이 쏟아지며 일제히 급락했다. 한국전력이 5% 넘게 하락한 것을 비롯 전기가스 등 경기 방어적인 업종 역시 외국인 매도세가 집중되며 약세를 면치 못했다.

◆환율 1400원 위에서는 외국인 매도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서 원화 약세(환율 상승)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외국인은 당분간 매도 우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변종만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저점 이후 외국인은 원 · 달러 환율 1400원 이상에서는 매도 우위로 돌아서는 경향이 강하다"며 "원 · 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할 경우 외국인 매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증권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이후 이날까지 외국인은 원 · 달러 환율 1400~1450원대에서 1조35억원을 팔아 같은 기간 최대 순매도 규모를 기록했다.

반면 1250~1300원대에서는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 총 8785억원을 사들였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외국인 입장에서 원화 약세는 호재지만 지금은 보유 자산에 대한 환차손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큰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심리적 저항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코스피지수 1200선과 마찬가지로 원 · 달러 환율 1400원 이상은 아직 해소되지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부담감이 노출되는 마지노선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변 연구원은 "외국인이 리스크 확대와 축소에 따른 박스권 매매를 이어가고 있어 당분간은 환율 변동성과 함께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최근의 원 · 달러 환율 상승이 국가 부도위험지표 등의 상승을 동반하고 있지 않아 지난 연말과 같은 무차별적인 외국인 매도로 이어질 확률은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환율이 추가 상승해 오버슈팅 국면에 접어들 경우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이 다시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설 수 있다는 판단이다.

강성원 동부증권 연구원은 "이 경우 그동안 중소형주 대비 약세를 보였던 대형주들이 수익률 갭 메우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면서 "특히 외국인의 관심이 높은 업종 대표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대형 수출주들은 가격 경쟁력 강화에 따른 수익성 개선 효과도 기대돼 장기적으로 경기침체기의 효과적인 투자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외국인의 매수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