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연구기관들이 최악의 경제 상황 속에서 진행방향이나 속도를 예측하지 못하고 모조리 전망에 오류를 범하는 바람에 오히려 경제 위기를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8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경제연구기관에 따르면 정부나 한은은 물론이고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주요 연구기관들이 2008년 경제성장 전망치에서 2% 포인트가 넘는 오차를 낸 데 이어 올해 전망치마저 실적이 나온 뒤에 허겁지겁 수정하고 있어 예측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경제 전문기관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전대미문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하는 등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가 많았다고 항변하지만 선제적 경제 예측을 통해 경제에 도움을 줘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 오보로 신뢰 추락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한국 경제가 깊은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은 정부의 정책 부재 탓도 크지만 '전망치 오보'를 양산한 경제연구소들의 책임도 적지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연구소들은 앞으로의 경제 진행상황을 예측해 정부의 정책 입안 및 민간 기업의 경영 전략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인 KDI를 포함해 민간연구소들도 한결같이 미국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감지하지 못했고 경제 성장률 또한 어이없을 정도로 빗나갔다.

KDI는 2007년 10월에 낸 하반기 경제 전망에서 2008년에 한국의 수출 증가세가 9% 후반에 머물겠지만 내수가 4%대의 견실한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률이 5% 수준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경상 수지는 26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결과치는 성장률 2.5%로 예상치의 절반에 그쳤다.

경상수지 적자는 60억 달러 정도로 KDI 예상치의 배가 넘었다.

다른 주요 연구소들도 마찬가지다.

금융연구원 4.8%, 산업연구원 5.0%, 삼성경제연구소 5.0%, LG경제연구원 4.9%로 너나없이 비슷한 수치를 내놓았지만 실제 성장률과는 거리가 멀었다.

연구기관들은 작년 하반기 내놓은 올해 성장률 예측 또한 엇나갈 기미가 보이자 수정치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KDI는 지난해 11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3%로 잡았다가 두달만인 지난 21일 화급히 0.7%로 재조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전망치 3.2%), LG경제연구원(1.8%), 현대경제연구원(3.1%), 한국경제연구원(2.4%) 등은 이런저런 눈치를 보고 있지만 2~3월에는 대폭 하향조정된 수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와 한국은행도 부실 전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재정부는 2008년 성장률 전망을 4.8%로 내놓았다가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비현실적이라는 세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7.4.7(7% 경제성장, 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공약을 고집해 7%로 높인 바 있다.

2008년 민간 소비도 4.5% 증가할 것으로 봤으나 실제는 0.5% 증가에 그쳐 오차가 4% 포인트에 달했다.

한국은행은 2007년에 내놓은 2008년 성장률 예측치가 4.7%, 2008년 7월 내놓은 전망치는 4.6%였다.

이후 9월에 금융위기가 터지자 2008년 12월 3.7%로 급히 낮췄지만 실제 결과인 2.5%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비자 물가도 3.3% 상승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4.7%로 나왔다.

올해 경제 전망에서도 재정부는 3% 성장을 목표치로 내놓았지만 간부들은 공공연히 제로 성장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한은은 2%로 전망했지만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 책상머리 전망이 한계

최근 경제 전문기관들의 예측은 뒷북치는 기상청과 같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최근 기상청이 눈이 쏟아진 뒤에 대설주의보를 내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처럼 경제연구소들도 한국 경제가 바닥으로 떨어진 뒤에야 전망치를 수정하는 등 뒷북치기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KDI 등 주요 연구기관 내부에서도 자성론이 일고 있다.

그동안 일부 연구원들이 실물 경제를 등한시한 채 집계된 수치와 자료만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다보니 예측 자체가 빗나가고 있다는 반성이다.

한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외국 투자기관의 경우 경제 전망을 낸 뒤 좀 이상하다 싶으면 대형마트나 시장 등 현장에 가서 살펴본 뒤 수정해 오차를 최소화한다"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우 컴퓨터에 수치를 넣고 통계만 뽑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메시지를 원하는 정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연구기관들이 지나치게 눈치를 본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기부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는 전망을 내놓기 어려운게 연구소들의 현실"이라면서 "연구소들은 정부 정책의 합리성 제고와 민간 경제 주체들의 예측 가능한 경제활동을 위해 정부 눈치만 보지 말고 현 상황에 맞는 전망치를 내놓아야한다"고 지적했다.

◇ 中企 잡은 환율 예보

기상예보가 빗나가면 대부분 예상치 않은 비를 맞는 정도로 끝나지만 연구기관의 경제 전망치가 어긋나면 국가적으로 아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연구기관들의 외환시장 전망 사례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2008년의 환율을 전망해야 하는 2007년 말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내려갈 것을 우려하던 상황이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연구기관들 역시 원.달러 환율 하락을 예상했다.

은행이 기업을 상대로 판매한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는 이런 전망에 기초한 상품이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환율이 지정된 상한선을 넘으면 계약 금액의 2~3배를 시장가격보다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는 통화옵션 상품이다.

즉 환율이 지정 상한선을 넘으면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결국 전문기관들의 환율예측은 틀렸고 금융업계는 키코로 인해 국내 487개 수출기업이 입은 손실이 지난해 10월 기준 4조5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키코로 인해 수출 중소기업들이 부도로 내몰리는가 하면 일부 은행들도 대규모 평가손실을 입어 순익이 급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최근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대해 효력정지 결정을 내렸다.

키코 같은 상품은 하나의 예이고 경제예측이 틀리면 정부의 정책이나 경제주체들의 행위 또는 방향이 잘못된 채로 나오기 때문에 경제 불안을 가중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에 상황을 좋게 인식해서 미적지근한 대책이 나올 경우 심각한 위기상황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큰 타격을 입게되는 것이다.

민간연구소 고위관계자는 "경제 예측치에 따라 정부의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경제 주체들이 대응 방향을 잘못 잡을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연구기관들이 예측치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예측이 틀리면 사과하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박용주 기자 president21@yna.co.krspee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