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49)은 매년 1,2월 주말엔 빠짐없이 산행을 한다. 겨울에 등산을 통해 체력을 키워놔야 한 해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운동선수로 치면 동계훈련을 하는 셈이다.

유 사장은 겨울산행 예찬론자다. "겨울 등산을 통해 체력이 잘 단련된 해에는 봄 여름 가을 골프때 스코어가 좋게 나오지만 등산을 대충한 해에는 골프 기록이 신통치 않다"는 게 그의 경험이다.

2009년을 맞는 유 사장의 마음가짐은 겨울산을 오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올해를 동계훈련처럼 내실을 다져야 하는 시기라고 보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지는 경제한파로 당분간 증권업계 침체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는 "백투더베이직(Back to the basic)이라는 원칙 아래 올해는 그 동안의 성장과정을 돌이켜 보면서 지금까지 드러난 공과를 정리하고 조직을 재정비하겠다"며 올해 계획을 밝혔다.

또한 "장기화 될 수 있는 불황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증권업계의 환경 변화에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사장은 이를 위해 최근 조직 통합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주식 위탁매매 부문(Brokerage)과 금융상품 관리(Asset Management) 부문을 하나로 합친다는 구상이다.

즉, 한 직원이 주식 위탁매매와 금융상품 관리를 모두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2005년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신탁이 합병한 이후 아직까지 잔존하는 조직의 벽을 허물겠다는 게 유 사장의 의지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다음달부터 본격 시행 될 자본시장통합법에 대비해 △IB(투자은행) 사업역량 강화 △우수인력 양성 및 선진금융인프라 구축 △고객 중심의 영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 사장은 "특히 국내외 IB 사업 강화와 수익 다변화를 위해 헤지펀드의 시장 진출과 베트남 합작 증권사 및 중국 자회사 설립을 추진 중"이라며 "대안투자 활성화와 파생상품 수요 확대에 대비한 선물업 진출과 프라임 브로커리지 사업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스크 관리도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어느때보다 리스크관리가 중요해졌다"면서 "리먼브러더스의 부도 여파에서 우리도 자유롭지는 못 했지만, 이를 통해 얻은 교훈으로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리스크 관리 역량을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03년부터 위험수준을 감안한 실적측정시스템(Risk Adjusted Performance Measurement)을 임직원 성과평가에 적용하고 있다. 단순히 얼마를 투자해 얼마를 벌었다는 식의 평가가 아니라, 리스크의 강도에 따른 투자성과를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유 사장은 자통법에 대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큰 흐름에서 자통법은 자본시장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나 하위 법령의 규제가 지나칠 경우 전반적인 법의 취지를 무색케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자통법은 혁신과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해 네거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지만 시행령이나 하위 법규는 일부 포지티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포지티브 시스템은 가령, 금융회사가 개발하고 판매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을 말한다면 네거티브 시스템은 개발과 판매를 금지하는 것만 법규에 정해 놓고 그 외 상품을 모두 팔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유 사장은 "하위 법령에서 규제를 계속해 사실상 포지티브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면 밥상을 한 가득 차려놓고 정작 먹을 게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회사의 불완전 판매를 방지를 위해 최근 증권업협회 등이 내놓고 있는 방안도 꼭 필요하지만 관련규정이 지나칠 경우 독(毒)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롭게 증권업에 진출한 사업자의 경우 금융상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완전 판매가 문제 될 수 있지만, 우리(한국투자증권)같이 오랫동안 상품판매 사업을 한 곳은 불완전 판매로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유 사장은 이어 "관련 규정이 지나치게 강화되면 실질적으로 다양한 상품 개발이 어렵다. 예컨대 상품 하나 설명하는데 몇 시간씩 걸린다면 금융사는 결국 인건비 부담으로 인덱스나 채권 등 단순한 상품만 팔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해외 사업을 올해는 크게 벌이지 못 할 것 같다"면서 "다만 중동의 오일달러를 한국에 유치하는 방법을 강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