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공금 7억 날리고 고시원 전전하다 구속

"이젠 정말 주식이 후회스럽습니다."

'증권맨' 출신 재건축조합장이 개인 재산뿐 아니라 조합 공금까지 빼돌려 주식·선물·옵션 등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리고 끝내 구속되는 처지가 됐다.

12일 서울 강동경찰서에 따르면 최근 구속된 모 아파트재건축 조합장 박모(60)씨는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굴지의 증권사 직원이었다.

당시 49세의 한창 나이에 회사 부도를 맞은 박씨는 아내와 두 딸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제2의 삶을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러나 실직할 때까지 성실하게 일해 왔고 또 착실하게 저축했기 때문에 당장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인 1997년 중순께 살고 있던 아파트의 재건축사업이 확정돼 조합장을 맡기도 했다.

이런 박씨를 패가망신으로 이끈 것은 다름아닌 주식과 금융상품 투자를 통한 '대박'의 허황된 기대였다.

직장에 다닐 때도 주식투자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퇴직한 뒤 시간적 여유를 갖게된 박씨는 `고위험 고수익'의 선물·옵션에 손대기 시작했다.

증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며 투자지식을 쌓아왔다고 생각했고 실제 투자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린 적도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과신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수익률이 저조해 손해가 났고, 그럴수록 `대박'과 `한방'을 되뇌며 점점 많은 돈을 끌어 쓰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게다가 남편을 우려의 눈길로 지켜보던 박씨의 부인도 결국 "주식 때문에 돈도 다 날리고 사람도 망가졌다"며 2003년 이혼을 요구했다.

특히 박씨는 이혼 뒤 투자 손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끝내 '넘어서는 안될 선'까지 넘고 말았다.

추가 투자금으로 써서 손실을 만회하려는 욕심에 2004년부터 자신이 관리해 오던 재건축조합의 예비비 3억2천만원까지 손을 댄 것이다.

예비비는 원래 재건축이 끝난 뒤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조합원들로부터 갹출해 모아놓은 공금으로, 보관기관(5년)이 지나면 모두 조합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 결과는 역시 참혹했다.

박씨가 회사를 그만 둔 뒤 주식·선물·옵션 등에 투자해 손해본 돈은 사재와 공금을 합쳐 모두 7억여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윽고 생활비마저 다 떨어지자 박씨는 고시원을 전전해야 했고 생계수단으로 대리운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여기에다 지난해 말 횡령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조합원들의 고소로 경찰 수사를 받아 왔으며 결국 지난 7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박씨는 경찰에서 "내가 주식에 미쳐서 그랬다"며 "너무나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