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운불우(密雲不雨)'. 구름은 짙게 끼었는데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올해 은행 업종 전망을 내놓은 대부분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다가올 비(악재)를 걱정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중소기업 대출연체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환율 상승에 따른 파생상품 손실도 여전히 부담이다. 언젠가는 풀고 가야하는 숙제를 은행권이 안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부실이 어느정도 해소되거나, 최소한 규모만이라도 확인된다면 은행 주가가 크게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증시 전문가들 보고 있다. 구름이 어느정도 걷히고 나면 따스한 해볕이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작년 4분기 실적은 '선방'

당장의 실적은 나쁘지 않아 보인다. 대신증권이 KB 신한 우리 등 시중 주요은행과 대구 부산 전북 등 지방은행의 2008년 4분기 순이익을 추정해 합산한 결과, 전년동기 대비 1.4% 늘어난 1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유진투자증권도 KB 신한 등 5개 주요은행의 4분기 순이익이 5.4%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대손충당금 비용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순이자마진(NIM)이 잘 유지됐고 한국은행의 지급준비금 이자도 실적에 보탬이 됐다는 평가다. 또 임금 동결과 성과급 미지급에 따른 판매및 일반관리비 통제도 긍정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은행 주식을 사야 한다'고 선뜻 말하는 애널리스트는 드물다. 이들은 실적보다 잠재적인 부실을 우려하고 있다. 작년 세계적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등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이후 리스크 관리 실패가 곧바로 회사 부도로 연결될 수 있음을 학습한 까닭이다.

홍헌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잠재부실 가능성이 있는 산업의 구조조정이 가시화돼야 은행업종의 실적 관련 불확실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올해는 어려운 한해가 될 것"

국내에서 본격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올 상반기부터 진행되면 대손비용이 늘어나 은행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은행이 빌려준 돈 가운데 일부를 떼일 것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설사와 중소 조선사 가운데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오는 23일까지 확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지원 기업과 퇴출 기업이 가려지는 과정에서 돈자루를 쥔 은행도 기업과 함께 부담을 안게 된다.

키코 손실업체 등에 대한 만기연장과 신규대출 등 유동성 지원도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

김은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과 부실 처리가 지연되는 과정에서 추가 대출 지원이 이뤄진다면 잠재적 부실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정욱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 방식이 선 채권단 결정, 후 정부 개입으로 사실상 민간 주도로 이뤄져 본격적인 구조조정 시기는 예상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이 정부 주도의 과감한 구조조정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릴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는 구조조정 이슈가 은행의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동부증권은 이 증권사가 분석하는 7개 은행의 올해 순이익이 작년에 비해 21.3% 급감할 것으로 예상했고, 메리츠증권도 은행권이 10~15%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임일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경기 둔화로 대손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며 "은행의 수익성 다변화와 유지에 기여했던 비이자이익도 올해는 정체가 예상된다"고 했다.

이어 "국내외 경기 둔화로 대출경쟁 완화와 신용위험 상승에 힘입어 순이자마진은 조금 오를 것으로 보이나, 대손비용이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은행 주가가 올해 안에 본격적인 반등을 하기는 어려운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가 바닥을 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2분기나 3분기께 베일에 싸였던 은행의 부실 규모가 드러나고, 그 이후 큰 반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닥이 보이는 순간이 은행주의 매수 타이밍이라는 지적이다.

임일성 애널리스트는 "국내 은행업종의 주가는 과거 10여년간 경기급냉, 신용경색, 대규모 부실채권 발생 시기에 크게 떨어졌다가 해결의 단초가 제공되면서 폭발적인 상승기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배정현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2분기는 은행의 자본확충과 지속적인 금리인하 효과가 가시화되고 선제적인 구조적 움직임도 진행되는 시기여서 부동산 시장의 바닥권 진입을 위한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국내 금융시장과 은행주의 발목을 잡는 뇌관도 제거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업종 추천주는 신한ㆍKB금융

삼성 대우 한국 미래에셋 등 주요 증권사 13곳의 은행업종 담당 애널리스트 가운데 11명이 업종내 '최선호주(Top Pick)'로 신한지주를 꼽았다. KB금융지주도 5명이나 추천했다. 가장 '안 망할 것 같은' 업종 대표주 두 곳이 그나마 투자할만 하다는 것이다.

특히 신한지주의 경우 가장 부실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부동산 PF 여신 비중이 낮은 게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 리스크 관리를 잘 했던 것도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받는 요인이다. 여기에 카드 등 비이자 부문이 강한 것도 이익의 안정성을 높여준다는 진단이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전북은행(대우, 메리츠)과 대구은행(동양, 신영)이 각각 두 표씩을 받았고, 하나금융지주도 두 곳의 증권사로 부터 매수 추천을 이끌어 냈다. 우리금융 외환은행 기업은행은 단 한표도 얻지 못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