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대형 M&A(인수ㆍ합병)건이 별다른 진전 없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이 어느정도 안정된 모습이나 실물경기 침체로 기업 인수에 따른 메리트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자금시장도 여전히 경색돼 있어 M&A 주체들이 선뜻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 있다.

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유진투자증권 매각 협상은 가격 문제로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는쪽인 유진기업과 사는쪽인 르네상스PEF(사모펀드) 모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열흘 넘게 침묵을 지키고 모습이다.

물밑에서 인수가격과 부실에 따른 단서조항을 두고 치열하게 '샅바싸움'을 하고는 있지만 입장차이가 워낙 크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르네상스PEF가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은 유진투자증권이 갖고 있는 부실규모인 것 같다"면서 "이 때문에 부실이 더 드러날 경우를 대비한 단서조항을 확실하게 넣고 싶어 하지만 유진기업이 이에 쉽게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르네상스PEF는 1300억원 가량에 '플러스 알파'를 더한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준다는 조건을 유진기업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용승계 문제 등 가격 이외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결국 협상의 관건은 르네상스PEF가 유진기업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내는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협상은 산업은행과 한화의 이견이 커 이달 30일로 예정된 본계약 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6조원이 넘는 인수자금을 산업은행이 못박은 오는 3월 30일까지 한화가 스스로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한화그룹은 당초 보유현금과 유휴 부동산 매각, 대한생명 등 계열사 상장 등을 통해 인수자금의 절반인 3조원 이상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시장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부동산은 헐값에 내놔도 팔기 쉽지 않아 보이고, 대한생명 지분 가치는 반토막이 났다. 외부 자금조달은 고사하고 내부에서도 돈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재철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의 내부 부실 등을 이유로 3%에 불과한 가격조정폭을 5%로 높여달라고 산업은행에 주문하고 있다"면서 "협상기한도 문제지만 일단 가격을 최대한 낮춘다는 게 한화의 계산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화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부담이다. 대우조선 노조측은 "한화의 인수 의지에 대한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인수 이후 고용승계 등 노조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으면 현장 실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 M&A 전문가는 "예전 1억원이 지금은 10억원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인수자쪽과 에누리없이 팔려는 매도자쪽의 신경전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인수자들의 의지가 강해서 두 건 모두 협상이 결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