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경색 여파로 자금사정이 안 좋아진 기업들이 자회사를 매물로 속속 내놓고 있어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특히 일부 기업은 돈 빌리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장부가액도 못 받고 급히 자회사들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의료기기 전문 생산업체 쿨투는 전환사채(CB) 대금 상환을 위해 자회사인 카즈너지 지분 12.25%를 오는 25일 40억원에 매각할 예정이다.

이번에 쿨투가 상환 예정인 사채는 작년 11월 이 회사가 80억원 규모로 발행한 제 2회 사모 CB 가운데 굿모닝신한증권이 투자한 40억원 어치다. 이 사채의 만기는 내년 11월이지만, 굿모닝신한측이 중도 상환을 요구해오자 쿨투가 자회사 지분으로 상환을 갈음한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러한 상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쿨투의 제 2회 CB는 굿모닝신한 이외에도 미래상호저축은행과 동부생명보험에 20억원 어치씩 배정됐다.

장부가치도 못 받고 자회사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완구와 유아용품을 만드는 소예는 지난 23일 공시를 통해 의료용품 기업인 자회사 다우메딕스 보유지분 30% 전량을 23억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재무구조 개선과 유동성 확보가 지분 매각 이유다.

6월 결산법인인 소예는 올 1월부터 6월 사이 6억9600만원의 당기순손실과 4억9600만원의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을 기록했다. 작년에도 순손실이 15억원 가량 발생했다. 이 때문에 재무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회사측은 결산보고서에서 지분법적용투자주식의 처분손실과 감액손실, 단기매매증권의 처븐 및 평가손실이 실적 악화의 이유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예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이번에 내놓은 다우메딕스 지분의 장부가치는 25억원이다. 처분금액(23억원)이 장부가치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자회사 대경기계기술의 지분 매각을 추진중인 남광토건도 비슷한 사례다. 남광토건은 이날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국민연금07-1기업구조조정조합qcp12호(대경기계기술)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광토건이 보유중인 대경기계의 지분은 26.54%다. 남광토건은 플랜트분야 진출을 위해 지난 1월 주당 4만2400원, 총 617억원에 대경기계 지분을 온세텔레콤으로부터 인수했다. 하지만 올 들어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자 남광토건의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기대를 갖고 인수한 대경기계마저 지난 2분기 19억원의 영업적자를 내자 남광토건이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매각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경기계 주가가 지난 6월을 고점으로 최근 60% 넘게 급락한데다 건설 경기가 미분양 등으로 바닥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사의 한 재무담당 직원은 "요즘같은 상황에서 증자나 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 같다"면서 "은행권도 담보를 제시하지 않으면 돈 빌려주길 꺼리고 있어 상장 프리미엄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푸념했다.

최관영 현대증권 연구원은 "자금시장 경색으로 증권사 사이에 콜 자금도 제대로 안 돌 만큼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면서 "재무구조가 우량한 회사도 자금을 못 구해 안달인데 적자 회사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더욱 문제는 기업들이 내놓은 우량 자산도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때문에 제 값을 못 받고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투자 기업들의 재무상황을 더욱 꼼꼼히 살펴야한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