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제 검토…"독립성은 보장해야"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뒤 유리한 분석보고서를 내는 방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 혐의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름에 따라 증권가 애널리스트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최근 연예 기획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흔적이 포착된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금주에 소환, 금품 수수 경위를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대상에 오른 애널리스트들은 팬텀엔터테인먼트에 유리한 분석보고서를 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과 증권가는 금융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애널리스트들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규제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시적인 보완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 끊이지 않는 애널리스트 도덕성 논란 = 애널리스트들의 도덕적 해이 논란은 증권가에서는 오래된 이슈다.

그러나 이번 팬텀엔터테인먼트 사건처럼 검찰에 의해 금품수수 정황이 일부라도 드러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설마했던 애널리스트들의 부도덕성이 도마위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증권가에 미치는 충격파가 만만치 않다.

애널리스트들은 과거에도 주가를 띄우려는 작전세력의 일원으로 가담하거나 허위정보 또는 미공개 정보를 유포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히는 등 증시에서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일에 관여해왔다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받아왔으나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된 경우는 드물었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2002년 메릴린치의 인터넷 담당 애널리스트가 지인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통 같은 종목",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등의 평가를 내렸던 기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매수추천 보고서를 내놓은 사실이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져 충격파를 촉발한 바 있다.

당시 이 애널리스트가 매수 추천했던 인포페이스와 24/7미디어의 주가는 132달러와 30.43달러에서 애널리스트의 이중적 행각이 드러난 후 각각 1.46달러와 0.2달러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나름의 고충을 호소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애널리스트 전체를 범죄집단으로 몰아붙여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신설 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대형 증권사들은 이해 관계가 많이 얽혀 있어 자기 목소리를 똑바로 내지 못한다.

고객이 보유한 종목에 대한 `매도' `비중축소' 의견은 자칫 고객을 잃고 회사에 손실을 줄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증권사들의 각종 금융상품은 증시가 꼭지점에 도달했을 때 잘 팔린다.

증권사들은 대개의 경우 이런 사실을 알지만 회사이익을 위해 고객들에게 매수를 자제하라고 말하지 못하며 애널리스트들은 계속 `장밋빛' 전망을 내놓게 된다"고 전했다.

◇ 보완책 시급…"시장판단에 맡겨야" =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도덕적 해이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으나 관계기관의 보완책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재 증권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증권협회와 정책당국인 금융위원회의 영업행위에 대한 규정과 증권업감독규정은 애널리스트 분석보고서의 공표 방법과 유가증권 매매 제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팬텀엔터테인먼트나 미국 메릴린치 사건에서처럼 엉터리 보고서로 인한 애널리스트의 도덕적 해이를 응징할 수 있는 법적장치는 미흡한 것이다.

내년 2월 시행되는 자본시장통합법상에도 애널리스트들이 분석보고서를 이용해 불건전 거래나 영업행위를 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것 외에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구체적인 장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가 나름대로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애널리스트의 판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보고서 내용의 진위에 대한 책임을 법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시장에서 최종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부도덕성과 자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거론되면서 최근에는 애널리스트 자격증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업계에서 검토되고 있다.

애널리스트 자격증제는 애널리스트에 대한 관리.감독을 수월하게 해 불공정행위를 줄일 수 있는 데다 객관적 자격을 갖춘 애널리스트의 보고서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고 익명을 사용하는 무자격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난립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실한 분석보고서를 내놓은 후 타증권사로 옮기는 부도덕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증권협회 관계자는 "애널리스트의 도덕성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우며 시장의 평판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들이 소신있게 일을 하도록 회사 내에서 업무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대호 기자 dae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