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투자하듯 주식을 사세요. 그리고 주식을 살 때에는 주권이 아니라,그 회사를 산다는 생각으로 투자하세요. 그러면 자연스레 장기 투자로 이어질 것입니다. "

글로벌 증시가 동반침체 현상을 보이면서 주식과 펀드투자자들의 답답한 마음도 커져가고 있다. 증시부침에 따라 매일이 '일희일비'의 연속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주식시장에 장기적으로 투자한 사람도 이런 마음일까.

오성식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주식운용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사진)는 "20년 투자경력으로 보건데,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오 상무는 국내 최장수(설정액 500억원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펀드 기준) 주식형펀드인 '템플턴그로스주식형'의 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1999년 1월11일에 설정돼 5589억원의 설정액(6일 기준)을 갖고 있는 이 펀드의 누적수익률은 422%가 넘는다. 같은 기간 증시 상승률(152%)의 3배에 가까운 수익률이다.

그는 "증시는 내리면 오르게 돼 있고,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런 시장에서 내가 산 회사에 대해 믿음이 확고하다면 주가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근심까지 들진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오 상무는 그가 책임지고 있는 펀드의 수명처럼 장기투자의 신봉자다. 주식과 펀드를 1년 단위로 투자하는 것도 단타투자로 여긴다. 최소한 3년을 내다보고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주식과 펀드투자에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벤자민 그래이엄이나 템플턴 경(Sir),워런 버핏 등 세계적으로 주식투자로 성공한 사람들마다 주식 운용 스타일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복리'를 얘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매년 이자가 이자를 낳아 급격히 원금이 불어나는 '복리의 마술 효과'를 보려면 장기투자외엔 답이 없습니다. "

이처럼 장기투자 신봉자인 그가 '부동산에 투자하듯이' 그리고 '회사를 인수하듯이' 투자하라고 강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회사를 산다는 마음으로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이 1년 안에 회사를 되팔 생각을 하겠냐는 설명이다. 또 몇 억원씩 하는 부동산을 사면서 직접 찾아가 보지 않거나 대충 감으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그는 마찬가지 이유로 수급에 의한 증시 분석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는 철저히 시장의 얘기일 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오 상무는 "수급에 따라 주가가 변동하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합리적인 선택이 시장에 적용된다는 말인데,공포 탐욕 경쟁 등이 존재하는 금융시장은 합리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금의 이동이나 주식시장의 수급상황에 따른 투자를 하면 항상 단타투자만을 답습하게 된다"며 "따라서 무조건 기업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고 오래 기다리는 것만이 시장을 이길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투자철학을 치열한 전장에서 몸으로 체득했다. 1997년 외환위기 무렵에 당시 운용하고 있던 펀드가 투자한 주택은행이 감자를 단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유하고 있던 주택은행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하지만 오 상무가 정리한 가격은 주택은행 주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기록됐다. 투자하기 전에 주택은행에 대해 충분히 분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현실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반대의 경험도 있다. 같은 시기 만도그룹 계열사인 한라공조의 주식을 펀드에 편입하고 있었는데,유동성 위기로 만도그룹의 부도설이 불거졌다. 그로 인해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그는 한라공조의 편입을 늘렸고,이는 높은 수익률로 이어졌다. 오 상무는 "투자한 기업의 주식이 아닌 기업을 산다는 생각으로 투자 전에 분석하고 그 결과를 믿으면,아무리 공포가 닥쳐와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며 "주택은행은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한 결과로,한라공조는 믿음이 수익으로 연결된 경험으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회고했다.

그는 기업의 가치나 투자처를 판단할 수 있는 복선들은 실생활에서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을 보고 책을 읽거나 여행을 통해 사회 흐름을 짚어나가고,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주식을 사두면 반드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포털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다거나 해외여행을 주위에서 많이 나가고 있다는 징조 등은 그것이 숫자로 나타나기 전에 먼저 느끼는 것들입니다. 또 중국 증시가 급등하기 전부터 신문에는 중국의 개발 붐 현상이 먼저 등장하기도 했죠.하지만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알게 된 상황은 무시로 일관하다가 그것이 가격으로 전환돼 나타나면 그때서야 투자에 나섭니다. 경제학에선 자본이 몰릴수록 수익률이 낮아지게 됩니다. 누군가 크게 이익을 봤다는 얘기를 듣고 뛰어들면 늦는다는 얘깁니다. 지금 상황에서 중국 펀드가 그렇고,원자재 펀드가 그렇습니다. "

그는 펀드의 단기수익률에는 관심도 가지지 말 것을 주문했다. 펀드의 단기 성적은 단지 수급에 따른 시장의 얘기일 뿐이지 운용사의 철학이나 기업의 가치가 드러난 결과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펀드든 주식이든 투자에는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됩니다. 장기투자와 분산투자입니다. 너무 쉬운 말이어서인지 모두가 이 원칙을 무시하고 급등주만 좇아요. 하지만 결국 나중에 웃는 자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있는 펀드가 10년 가깝게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결국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킨 결과입니다. "

글=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