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과 중소기업이 손실 합의를 통해 통화옵션계약 분쟁을 해결한 첫 사례가 나왔다.

키코(KIKO) 스노볼(Snow Ball) 등과 같은 파생상품으로 인해 3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환차손을 둘러싸고 은행과 기업 간의 책임 논쟁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나온 이번 사례는 통화옵션 분쟁사태 해결에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무선데이터 모뎀을 만드는 코스닥업체 씨모텍은 지난 25일 주거래은행인 우리은행과 협의를 통해 2007년 7월 2년 기한으로 체결한 스노볼 계약 1건을 청산했다.

스노볼은 말 그대로 이익 또는 손실규모가 경우의 수에 따라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도록 레버리지를 높인 파생상품의 일종.이 회사가 우리은행과 체결한 스노볼 계약은 계약기간 중 원ㆍ달러 환율이 약정환율(945.2원) 미만일 경우 회사가 이익을 보지만 이보다 높을 경우 손해를 보는 구조였다.

이 회사가 계약을 맺을 시점에만 해도 환율이 900원대 중반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기관들의 예측이었던 만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 올 2월까지는 이익을 봤다.

문제는 지난 3월로 들어서면서부터.환율이 급등하면서 손실 금액이 '스노볼'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3월 말 당시 이 계약 한 건으로 입는 손실이 5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예상됐고 6월 말에는 81억원으로 불어났다. 신한ㆍ산업은행과 체결한 4건의 키코 계약으로 인한 손해까지 포함할 경우 이 회사가 입는 손실금액은 지난해 영업이익과 맞먹는 211억원으로 급증했다.


이 회사는 부랴부랴 스노볼 계약부터 해지하기 위해 우리은행과 협의에 들어갔다. 때마침 정부의 강력한 외환시장 개입으로 환율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지난 25일 원ㆍ달러 환율이 1007원대로 안정됐고,평가손실도 54억원대로 떨어졌다. 청산 타이밍을 보고 있던 회사는 '타깃'에 들어왔다고 판단,우리은행에 54억원을 지급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최근 3개월간 이미 처리한 7억원의 손실까지 감안하면 이 한 건의 계약으로 날린 금액만 61억원.지난해 영업이익의 25%가 넘는 액수다.

그러나 씨모텍이 입은 손실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회사는 통화옵션계약으로 손해를 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지난 5월 말 1분기 사업보고서를 뒤늦게 정정,증권선물거래소로부터 불공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주가는 폭락했고 소액주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손실을 본 소액주주들은 소송을 준비 중이다.

다행히 이 회사는 USB무선데이터모뎀 분야에서 세계 1위라는 기술력 덕분에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만 952억원 매출에 2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수출비중이 80%가 넘고 영업이익률이 25%에 달하는 알짜기업이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의 존립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애초부터 파생상품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행히 은행 측이 전향적인 자세로 양보를 했고 내부유동성이 많았던 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번 사태 이후 외환거래에 따른 내부통제시스템을 정비했다. 현재 유지 중인 4건의 키코계약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중도해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단 한 건의 통화옵션계약이 유망한 회사를 어떤 상황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환 헤지는 기업의 외환수요 범위 내에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심기/조재희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