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대거 이탈하면서 코스피지수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1700마저 붕괴됐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지난 5년간의 상승장이 마감되는 것 아니냐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예상보다 빠르고 깊은 증시 급조정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전문가들은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포감에 휩싸여 있을 때가 지나놓고 보면 기회였던 시기가 많았다며 최근 급락장에 뇌동매매하기보다는 신중한 자세로 접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외국인 보름간 5조8000억 순매도

최근 증시 급락의 주범은 외국인이다.

21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 들어 이날까지 모두 5조8486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 2일을 제외하고 13일째 순매도다.

이에 따라 국내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외국인 비중도 32%대로 2001년 수준으로 내려갔다.

외국인은 특히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부각될 때마다 한국 주식을 대거 털어내고 있다.

메릴린치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대규모 상각을 단행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진 지난 16일에는 1조원 이상을 순매도한 데 이어 미국 경기지표가 예상보다 부진한 것으로 나온 18일에도 1조원 이상 매도 우위를 보였다.

21일에도 외국인은 4070억원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전방위로 매도 물량을 쏟아내는 까닭에 국내 기관과 개인의 매수세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특히 물량을 팔겠다고 한번 결정하면 가격 불문하고 시장가로 내놓기 때문에 시장 하락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외국인이 대규모 '셀 코리아'에 나서는 이유는 국내 요인보다는 대외 요인이 불확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함춘승 씨티글로벌마켓증권 한국대표는 "미국을 시발점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인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에 대해 외국인이 보수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며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국 증시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둔 데 따른 차익 실현 욕구도 당연히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승 추세 훼손되나

국내 증시는 길게 보면 2003년 5월 지수 500선을 저점으로 지난해 10월 말 2000선을 돌파하기까지 5년 넘게 대세상승 흐름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증시 조정이 예사롭지 않은 데다 코스피지수도 3개월간 300포인트 넘게 추락하면서 대세상승 흐름에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증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추세 붕괴를 우려할 때는 아니라는 데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우선 불확실한 대외 변수와 달리 국내 상황만 놓고 보면 부정적으로 바라볼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부사장은 "시장에서 예상하는 올해 국내 상장사 기준 기업 수익은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더구나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국내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악영향이 예상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여기에다 국내 증시가 단기 조정받으면서 다시 저평가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것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김성주 대우증권 투자전략파트장은 "올해도 기업이익은 증가할 예정인 데 반해 주가는 작년보다 큰 폭의 조정을 받았으니 주가수익비율(PER) 기준 매력도는 한층 높아진 상태"라며 "외국인 매물이 잠잠해지면 증시는 바닥을 다지고 다시 상승 추세로 복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일각에선 추가 조정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미국발 경기 침체가 일시적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며 "코스피지수가 1600대 초까지 조정받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