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그룹의 대표 IT 기업들이 비실대고 있다.

경쟁력에 대한 믿음이 아직 크게 훼손된 건 아니지만, 단기 실적 불안에 주가가 연일 고꾸라지면서 국내 최대 그룹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때문에 늘 있어왔던 이건희 회장의 '위기론' 발언이 새삼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IT 제품들의 업황 부진에 주가는 맥을 추지 못하고 밀려났다.

최근 들어 제품가격 상승 등 업황 회복 가능성이 제기되며 반등을 노리고 있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지난 12일과 13일에도 삼성전자의 주가는 저항선인 60만원의 벽에 부딪혀 고전한데 이어 14일엔 해외발 악재에 외국인 매도세가 겹치며 힘없이 물러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상승 궤도에 올랐던 삼성전기는 올들어 지난해 하반기 상승분의 절반 이상을 반납한 상태다.

특히 올 1분기 실적이 추정치를 크게 밑도는 실망스런 수준일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주가는 연일 밀려나고 있다.

문제는 휴대폰 부품과 플립칩 반도체 기판의 부진.

가격하락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데다 휴대폰 업체들의 출하량이 줄면서 부품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눈길을 모았던 플립칩 서브스트레이트 사업도 중장기 성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올 상반기 동안에는 계속 고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외 증권사들이 잇따라 목표주가를 내려잡고 있다.

삼성SDI도 1분기 실적 전망이 시원찮다.

PDP와 CRT 등 TV용 디스플레이 사업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데다 새로 진출한 AM-OLED 시장도 조기에 형성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1분기 연결 매출은 1조3000억원 정도로 전년 대비 20% 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기와 삼성SDI는 업황도 업황이지만 그룹 계열사간 매출 의존도가 아직도 높은 수준이어서 전자의 부진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의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 의존도는 30%를 넘는다. 이는 삼성SDI(20%) 역시 마찬가지.

때문에 이들 기업은 매출처 다변화 등 독자 생존을 위한 길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삼성전기의 경우 전망이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삼성전자는 핵심 사업인 반도체의 회복에 대한 자신감은 부족한 상태지만, LCD 사업의 수익성 개선, 자사주 매입 완료에 따른 외국인 복귀 등을 배경으로 조만간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도 아직 남아있다.

삼성전기도 다른 부품업체들에 비해서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2분기엔 이익 모멘텀이 되살아날 것이란 전망이다.

단기적으로 부진하긴 하지만 장기적인 턴어라운드 추세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도 존재한다.

현대증권은 "휴대폰 부품의 가동률 하락은 주요 고객업체들의 계절적 재고조정의 여파에 따른 것"이라면서 "2분기부터는 재고조정이 마무리되면서 가동률이 점진적으로 회복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다만 삼성SDI는 상대적으로 평가가 뒤쳐진다.

신영증권의 이승우 IT팀장은 "PDP가 좋아져야 SDI도 좋아지는데 아직 기대를 걸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의 IT 업체들이 과거보다는 위상이 떨어지면서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예전만 못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대만 업체들과의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한때 1위를 노렸던 휴대폰 사업에서도 4위인 소니에릭슨에도 따라잡힐 것을 걱정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승우 팀장은 하이닉스(반도체), LG필립스LCD(디스플레이) 등 사업별로 견줄 수 있는 대안들이 많아 투자자들의 관심이 분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업황이 회복되면 시장을 따라가는 정도의 흐름을 보일 수 있겠지만, 업황 회복시 베타가 더 큰 삼성전기의 상승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내다봤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