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증시의 특징은 IT(전기전자)의 부진, 금융주의 대약진, 조선주나 철강주 같은 실적이 꾸준한 굴뚝산업의 재발견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시사한다.

우선, 금융주의 대약진.

최근 외국인들이 은행주와 은행지주회사주, 증권주 등 금융주를 연일 사들이면서 지난 13일 금융주가 IT주를 누르고 시가총액 1위 업종으로 오르며 대표업종으로 등극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융주의 약진은 우리 증시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읽기도 한다.

대우증권의 이경수 애널리스트는 지난 9일 ‘국내 투자자의 짝사랑’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주의 약진은 외국인들의 매수로 인한 단기 현상이 아니라 시장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거 카드대란이 났을 때와 외환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금융주 시가총액이 IT주를 앞선 적이 있었다. 그때는 경제가 비정상적이었던 시기였으므로 큰 의미가 없었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시장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므로 다르다는 것.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지난 15일 ‘업종대표주와 IT체제 붕괴’라는 보고서에서 금융주의 부각이 선진형 증시로 변화하는 중요한 징후라는 시각을 보였다.

물론, 증권가에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 만큼, IT와 자동차 등 기존 수출 주도주들이 단기적인 악재로 약세일 뿐 대세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애널리스트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도 알아둬야겠다.

둘째는 조선주의 강세. 이것은 전적으로 훌륭한 실적에 기반한 것이다.

전년대비 영업이익이 860.5% 늘어난 현대중공업, 56.7% 증가한 현대미포조선, 245.3% 늘어난 한진중공업 등. 이들은 중후장대한 제조업체로서 뚝심있게 실적으로 주가를 견인해왔다.

셋째, 근래 들어 재조명 받고 있는 철강주.

인도 타타스틸이 영국의 코러스사를 인수했고, 미탈이 포스코에 관심있다는 설 등 전세계 철강업체들의 M&A 이슈로 철강주들이 주목 받은 면이 있긴 하다.

그러나 조선주와 철강주를 함께 놓고 공통점을 찾아보면 확실한 강점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 날 갑자기 대박은 못 내도 확 주저앉지도 않는다는 점, 즉 ‘큰 등락 없이 꾸준한 실적을 낸다’는 것이다.

급등락이 심한 IT주들과 비교하면 조선, 철강의 꾸준한 실적은 좋은 대비가 된다.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IT산업은 경기의 사이클이 짧아 ‘변덕이 심한’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4.0% 감소했고, 삼성SDI는 전년대비 87.0% 줄었다. LG전자의 영업이익은 41.5% 줄었고, LG필립스LCD는 9454억원이라는 엄청난 영업손실을 냈다.

IT불황은 과거 인터넷이나 무선통신서비스 등장 같은 거대한 이슈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라는 해석도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업종대표주와 IT체제 붕괴’ 보고서에서 “경제가 저성장으로 들어가면 과거 같이 높은 이익 증가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주가도 과거 모멘텀 중심에서 장기적인 이익 안정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기업 실적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현재 실적이 양호해도 미래 이익을 가늠할 수 없어 단기 재료에 주가가 급등락을 했지만, 이제 경쟁력이 확인된 기업들은 믿고 기다릴 수 있다는 논리다.

즉, 선진증시로 갈수록 투자패턴은 대박을 낼 주식보다 꾸준히 안정적인 주식을 택하게 된다는 것.

이는 조선주와 철강주 등 꾸준한 실적주들에 최근 매수세가 몰리고 있는 것에 대해 좋은 설명이 된다.

‘IT주의 몰락’이라는 시각으로 IT주를 굳이 낮춰볼 것은 없다.

다만 그 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금융주와 꾸준한 실적주가 시대의 요구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한경닷컴 이혜경 기자 vix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