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선진국 투자은행 수준의 대형화된 증권사 출현을 적극 유도하기 위해 제2금융업종 간 겸영 금지를 푸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내년 초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통합법이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향후 업계에 메가톤급 재편 바람이 불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법이 가져올 효과와 증권업계 현 주소를 상·하 시리즈로 점검해 본다.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나올 것인가.' 정부의 자본시장통합법이 윤곽을 드러냄에 따라 골드만삭스와 메릴린치 같은 선진국형 투자은행을 지향하는 대형 증권사들 간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우물 안에서 싸워 온 증권업계가 이제 큰물을 만나 일대 혈전을 벌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바야흐로 증권업계의 '빅뱅'이 예고된 셈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증권사가 주식 중개뿐 아니라 자산운용 선물 신탁업 등 은행과 보험 영역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한데 아우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따라서 그동안 수수료 기반의 천수답식 경영에 허덕여 온 증권사들로선 은행 보험뿐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에 진출한 외국계에 맞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통합법이 시행될 경우 크게 두 방향으로 증권업계 재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화'와 '전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은 "향후 증권사들은 '규모의 경제'로 가느냐,아니면 '특화'로 가느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운명도 엇갈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빅5' 위주로 재편 가능성 현재 증권업계는 은행계와 대기업계,독립계의 삼각 구도로 경쟁하고 있다. 우선 은행계에는 우리금융지주 계열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자산운용,하나은행이 인수한 대한투자증권과 대한투신운용,산업은행 계열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신한금융지주 계열 굿모닝신한증권과 신한BNP파리바운용이 속해 있다. 또 대기업 계열에는 삼성증권(삼성투신운용) 현대증권 동양종금증권(동양투신운용) 한화증권(한화투신운용) 등이 포진해 있다. 이 밖에 한국금융지주 계열 한국투자증권(한국투신운용)과 미래에셋그룹(증권 자산운용 투신운용),대신증권(대신투신운용)이 독립 계열로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사장은 "통합법이 시행되면 이들 삼각 그룹에 속해 있는 증권사들 간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이라며 "국내 증권시장 규모로 따질 경우 장기적으로 5위 안에 드는 초대형사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따라서 그동안 별도 회사를 통해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 등의 다양한 업종에 진출한 그룹들에서는 업무 영역을 확장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증권사를 중심으로 다른 업종을 통합하는 움직임이 거셀 것으로 그는 분석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대형사 경쟁에서 뒤처진 증권사들과 독립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등은 전문 분야를 특화해 수익을 내든지,아니면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사로 편입되든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형 투자은행 가능할까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자본 시장을 하나로 통합해 대형화한다고 골드만삭스처럼 경쟁력을 가진 토종 투자은행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몇 가지 선결 과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는 "하나의 증권사가 자산운용 선물 신탁 등 서로 다른 업종을 통합할 경우 부문 간 이해 상충 등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투자은행 모델로 삼는 골드만삭스의 경우도 투자은행과 자산관리 부문이 분리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증권 운용 신탁 등의 업무를 통합할 경우 내부 방화벽 관련 가이드 라인을 엄격히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운용사 관계자는 "물리적인 통합만으로는 하루아침에 과거 100년 이상 노하우를 쌓아 온 선진국 투자은행과 겨룰 만큼 경쟁력을 갖긴 힘들 것"이라며 "통합을 가속화할 수 있는 정부의 실질적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