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가치가 '나홀로 약세'(환율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엔화나 유로화 파운드화 등 세계 주요 통화들은 최근 들어 모두 초강세(환율 하락세)인데 원화환율만 달러당 1천1백90원 안팎에서 '뻣뻣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홍콩달러나 대만달러 등 일부 아시아 국가의 환율이 원화와 비슷한 흐름이긴 하지만 환율 상승폭은 한국에 비해 훨씬 작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외환당국의 환율방어 의지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강하기 때문"이라며 "비자금 수사나 카드사 유동성 문제 등 한국 특유의 '컨트리 리스크'도 원화환율의 하락을 막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 두드러진 원화가치 약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유로화 환율은 지난 주 사상 처음 유로당 1.2달러대에 올라선 뒤 최근에는 1.22달러선을 돌파했다.


지난 10월초(1.16달러대)에 비해 4.6% 가량 절상된 셈이다.


같은 기간 엔화환율도 달러당 1백11엔대에서 1백7엔대 초반으로 내려가 엔화가치가 3.5%가량 높아졌다.


영국 파운드화 역시 4% 가까이 절상됐다.


반면 원화는 지난 10월1일 달러당 1천1백51원90전에서 9일에는 1천1백80원대 후반으로 높아졌다.


세계 주요국 통화와는 반대로 환율이 오히려 3%이상 오른 셈이다.


대만(환율 상승률 0.95%) 필리핀(0.74%) 홍콩(0.26%) 등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도 한국처럼 오르긴 했어도 그 폭에선 한국이 단연 압도적이다.


특히 한국은 올해 1백억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를 낼 전망이고 외국인들의 주식 투자자금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데도 원화환율이 하락하지 않는 것은 수급논리상 이해하기 힘든 '기현상'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 환율을 붙들어맨 요인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외환당국의 환율 개입(달러 매수) 강도가 훨씬 세다는 점이 첫째 요인으로 꼽힌다.


이로 인해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은 올들어 11월말까지 2백90억달러나 늘어 지난해 연간 증가폭(1백86억달러)을 이미 1백억달러 이상 초과했다.


두 번째 요인은 한국의 국가 위험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다는 것.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용불량자와 가계부채 문제, 대기업에 대한 비자금 수사, 얼어붙은 기업 투자심리 등이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우려되는 수출실적 왜곡 부작용


외환당국의 인위적인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 억제조치로 인해 당장은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 유지에 도움을 받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출가격을 왜곡시킨데 따른 '뒤탈'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내수경기를 만회하기 위한 카드로 '신(新)수출 드라이브'에 승부를 걸면서 무리하게 환율에 개입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잠잠했던 미국의 통화가치 절상 압력이 재연되면 외환당국도 어쩔 수 없이 시장에서 손을 놓아야만 한다"며 "이 경우 환율 급락이 불가피하고 외환당국을 믿고 투자전략을 짰던 기업이나 딜러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은행 딜러도 "외환당국이 개입강도를 낮추면 당장엔 환율이 떨어지겠지만 개입이 한계에 봉착했을 경우 예상되는 조정보다는 하락폭이 작을 것"이라며 "국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감안해서라도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꼬집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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