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중국경제가 '환율'이란 암초에 부딪쳤다. 미국과 일본이 위안화에 대한 절상압력 수위를 높여 나가자 유로화 강세로 고심하던 유럽연합(EU)도 이에 가세, 사면초가에 몰린 형국이다. 위안화가 세계의 전방위 절상압력의 타깃이 된 것은 중국이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저평가해 '나홀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는게 주된 이유다. 특히 미국은 무차별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저가수입품 때문에 산업경쟁력이 약화돼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ㆍ일ㆍEU 연합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중국은 "환율결정은 내부 문제"라며 절상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환율을 조정할수 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들어 외환규제 완화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의 반영이다. ◆ 질시의 대상인 '나홀로 성장' =전미제조업협회(NAM)가 얼마 전 위안화를 통상법 301조에 걸어 제소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환율의 인위적 조작이 수출보조금 지급과 같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 중국은 지난 94년 위안화 환율을 달러당 8.28위안에 고정시키는 달러페그제를 채택한 이후 저렴한 노동력과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무기 삼아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달러가 약세를 보이자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 5위의 무역대국으로 급부상했으며, 무역흑자 규모도 지난 한해 3백3억달러에 달했다. 대미 무역흑자규모는 일본보다 많은 1천50억달러에 이르렀다. 미국이 위안화의 평가절상에 앞장서고 있는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 규모도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했다. 막대한 무역흑자와 외자유치에 힘입어 외환보유고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돼 올 8월말 현재 3천4백70억달러로 일본에 이은 세계 2위다. 지난 수년간 경제침체에 시달려온 다른 국가의 눈에는 독주하는 중국경제가 질시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 시간벌기속 3단계 개방전략 =중국은 지난 7월 미국이 위안화 절상압력에 본격 나선 이후 항상 '노(No)'라는 반응으로 일관해 왔다. 조금 양보해서 "궁극적으로 변동환율제를 도입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 시점을 알 수 없다"(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는 입장만 표명했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도 외국의 평가절상 압력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통상법 301조를 들고 나올 경우 다른 국가들도 무역보복 조치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환율자유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변동환율제 도입을 최대한 늦춰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평가절상→복수통화바스켓도입→완전변동환율제실시' 등 3단계 시행 방침이 그것이며 이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에도 이미 착수했다. 저우 은행장도 이달초 변동환율제실시 이전에 복수통화 바스켓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중국이 지난 7월 수입확대 및 수출시 부가세환급 축소 등의 조치를 단행한게 그 예다. 이와 함께 부실 국유기업 정리 등 경제체질 개선도 서두르고 있다. 내달부터는 외환거래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조치가 사실상 페그제 폐지의 사전정지 작업으로 평가하면서 환율변동폭 확대 시점은 2004년께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수지 균형과 경제체질 강화 노력이 일정수준에 이르면 복수통화 바스켓제 단계를 거쳐 완전 자율변동환율제로의 이행수순을 밟을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의 후비량 수석연구원은 자율변동환율제 도입시기를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2008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우종근 기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