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박덕하 대구지점장은 "소(小)사장"이다. 지난 8월 독립채산제가 도입되면서 예산에서부터 직원 인사까지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근무자세도 완전히 달라졌다. 지점의 수입과 비용이 곧 자신들의 연말 성과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자 지시가 없어도 직원들이 사소한 일까지 먼저 알아서 대처하고 있다. 박덕하 지점장은 "전기요금만 해도 매달 5백만원 가량 나왔던 것이 4백만원으로 20% 줄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직원들이 이면지활용 등 다양한 비용절감 아이디어를 자발적으로 내고 또 적극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 지점장 권한을 크게 강화시킨 독립채산제도가 잇따라 도입되면서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당장 직원들의 영업마인드가 확연히 달라졌다. 한투증권 박 대구지점장은 "직원들이 토요일을 이용해 '골프영업'에 나서는 것은 물론 고객과 함께 할 수 있는 등산모임 낚시동호회 등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가입해 투자설명회를 갖겠다는 아이디어도 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투자증권 장능원 강남역지점장은 "영업목표가 '특정시점'의 외형이 아니라 '일정기간'의 평균 잔고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고객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지점 독립채산제'를 시행하고 있는 증권사는 대한투자증권 한투증권 미래에셋증권 정도다. 대투증권은 지난해 4월부터 모든 영업점을 대상으로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도 일찍이 창립초기인 지난 2000년 2월 '소사장제'를 도입,현재 35개 전 지점에 적용하고 있다. 한투증권은 지난달부터 대구지점과 서울 개포지점 등 두 곳에서 '완전 분사형 독립채산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들 소사장은 매년 회사와 '경영목표 이행각서'(MOU)를 체결하게 돼 있다. 한투증권의 경우 1년간의 경영성과가 경영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해당 지점장과 직원들은 초과분의 20%를 인센티브로 받게 된다. 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소사장들은 본사에 예산을 추가로 요청할 수도 있다. 반면 목표에 미달할 때는 독립채산제 실시 이전보다 보수가 최대 20%가량 깎이게 된다. 특히 소사장들은 목표 달성 실패의 책임을 지고 다른 지점으로 '좌천'된다. 그러나 목표를 초과 달성하는 소사장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계속 그 지점에서 일할 수 있다. 한투증권의 경우 소사장들은 지점 직원의 30%가량을 더 충원하거나 다른 지점으로 전출시킬 수 있고,대투증권은 지점장이 직원의 50%를 직접 뽑을 수 있다. 독립채산제가 도입되면서 마케팅전략도 좀 더 현장에 밀착하는 형태로 달라지고 있다. 대투증권 김정호 분당지점장은 "지점의 지역적 특성에 맞는 영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달라진 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분당의 경우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고객들이 많아 우선 투신권 간접 상품을 기본으로 고객 포트폴리오를 짠 뒤 현물주식이나 합성포지션을 이용한 옵션 같은 파생상품 투자를 권유하는 등 투자전략을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투증권 박 대구지점장은 "농사일을 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투자시기도 농사철 이후를 겨냥하도록 하는 등 '계절적인 요인'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립채산제는 '목 좋은' 지점과 '물이 나쁜' 지점간 형평성 문제 같은 부작용도 있지만 긍정적인 요인이 더 많다는 게 해당 지점장들의 공통된 평가다. 한투증권 조용욱 개포지점장은 "무엇보다 직원들이 '프로로서의 영업 마인드'를 확실히 갖게 됐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며 "앞으로 독립채산제는 더 확산되면서 증권가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