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가 발생한지 2주년을 맞는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가 테러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테러는 그 어느 현안보다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테러 이후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에 테러가 과연 독(毒)이 될 것인가,약(藥)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평가기간을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지만 테러는 미국경제에 어느 정도 약이 됐다는 평가다. 2000년 하반기 이후 침체국면에 들어선 미국경제는 테러가 발생한 직후인 2001년 4·4분기를 저점으로 회복국면에 접어들어 지난해에는 2.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지난해 수준을 웃돌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테러가 경제에 약이 된 이면에는 많은 비용을 치렀다는 측면도 있다. 재정사정이 악화된 점이 대표적이다. 올 회계연도에 미국 재정적자는 4천5백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이라크간 전쟁과 테러복구를 위한 재정지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경제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소한 미국 경제시스템은 지난 2년간 계속된 추가 테러 위협과 대응과정에서의 경제정책,기업활동,국민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마디로 테러 이후 지금까지 미국경제는 '테러·전시 체제'로 요약해볼 수 있다. 백업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줬던 것도 커다란 영향이다. 테러 이후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백업시스템의 확보여부를 새로운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각국들은 테러 등으로 경제의 원(原)시스템이 붕괴됐을 경우 발생하는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백업시스템 구축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도 중요한 변화다. 9·11 테러를 계기로 테러와 세계경기 동반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각 국간 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특히 테러집단을 지구상에서 몰아내기 위해서는 테러집단에 유입되는 돈세탁 자금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각 국간의 협력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가 경제에 될 수 있는대로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제까지의 '작은 정부론'대신 테러와 같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큰 정부론'이 힘을 얻었다. 정부의 힘이 강해진 나머지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실패'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주목된다. 경제정책의 무게중심도 바뀌었다. 이론적으로 작은 정부론에 부합되는 정책은 통화정책인 반면 큰 정부론에 맞는 정책은 재정정책이라 볼 수 있다. 테러 이후 '재정정책의 동조화'로 부를 만큼 각국들이 부양책으로 재정지출과 조세감면을 일제히 추진했다. 반면 통화정책은 금리인하 '무용론'이 제기됐을 만큼 무력화됐다. 산업별로도 명암이 엇갈렸다. 테러 예방 차원에서 보안과 보험산업은 호황을 맞았다. 반면 항상 추가 테러위협에 휩싸였던 항공산업은 부진했다. 미국 국민들의 일상생활에도 테러의 영향이 파고들었다.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애국소비 운동이 재현됐다. 고용행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연봉을 중시해 회사를 택하고 평가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우선하게 됐다. 결국 9.11테러 발생 2주년을 맞는 미국과 세계경제는 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앞으로 추가 테러 위협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이런 변화들이 어떤 모습으로 굳어져 21세기 세계경제 질서를 만들어 낼 것인가는 또 다른 관심사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