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민주당과의 당정협의를 거쳐 기업금융 활성화 지원책을 내놓은 것은 기업 투자가 더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위축돼 있다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올 예상성장률인 3%대 초반을 갖고는 신규 고용 창출은커녕 현 고용수준 유지도 어려운데, 기업투자 부진이 지속될 경우 성장잠재력이 더욱 고갈돼 실업대란 등 걷잡기 힘든 본격 위기상황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그동안 가계 등 소비자금융에 무게중심이 옮겨져 있던 금융회사들의 대출이 기업금융 쪽으로 물꼬를 바꿀 수 있게끔 각종 제도적 유인책을 최대한 동원키로 했다. 은행 등에 대한 건전성 규제를 탄력적으로 운용,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 능력을 높여주고 신용이 다소 떨어지는 중소기업들도 증권시장에서 쉽게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 그러나 금감원의 이같은 복안이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지 장담키 어려운 상황이다. 요즘의 투자 부진은 기업들이 돈을 못 구해서라기보다는 불투명한 경제정책과 불확실한 경기 전망으로 인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데 따른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 기업금융 개선책 왜 나왔나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계속돼온 건전성 감독 강화 위주의 금융 구조조정이 기업들의 투자 위축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성장잠재력 약화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실제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중은 97년말 1백42.2%에서 지난 3월말 1백14.0%로 28.2%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이 기간동안 가계부채 비중은 54.5%에서 75.4%로 급증했다.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5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정책이 결과적으로 기업금융을 과도하게 축소시킴으로써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켰다"며 "감독기구 차원에서라도 기업금융을 저해하는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 기업투자에 대한 총력 지원체제 금감원은 이번 대책이 본격 시행되면 그동안 원활한 기업금융을 가로막아온 각종 관행과 제도는 대부분 제거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은행권에 대한 BIS비율 1등급 기준이 1%포인트 하향 조정되면 은행권이 기업에 공급할 수 있는 자금 규모만 60조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또 대출자산에 대한 건전성 분류때 금융회사가 부분적으로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데다 부실 여신에 대한 책임도 5년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면제해 주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대손충당금 적립 및 사후 손실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돼 우량 중소기업 등에 대한 자금공급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투자 유인 효과는 '글쎄' 그렇지만 기업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직접적인 투자 유인으로 이어질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경기가 본격적으로 상승세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들은 현금 유보액이 적지 않은 상태지만 경기 전망에 대한 확신이 없어 설비투자 등을 자제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길영 금감원 감독총괄국장은 "앞으로 경기가 호전되면 자금 수요가 몰리는 만큼 이 때에 대비해서라도 기업들이 수월하게 자금을 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