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의 주식 매수 급증 등으로 달러화가넘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자 정부와 한국은행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위해 1천200원선의 환율을 지키려고 외환시장에서달러를 사들이는 등 안간 힘을 쓰고 있지만 외국인의 주식 매수 자금 유입으로 환율이 방어되지 않고 있다고 외환 전문가들이 17일 지적했다.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1.6원이 밀려 1천190원선으로 떨어졌다. 지난달에는 외환 당국이 시장 개입을 통해 대체로 1천200선을 지켜냈지만 이달에는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로 달러 공급이 크게 증가하면서 환율이 떨어져 1천190원선 방어도 힘겨워졌다. 지난달 28일부터 계속된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 규모는 원화로 1조7천억(14억달러)에 이른다. 외국인의 '사자'세가 워낙 강해 당분간 순매수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보인다. 이 때문에 수출 기업들은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어려운 수출 환경 속에서 그나마 '박리다매'로 버텼는데 환율이 하락하면서수익성이 떨어져 수출을 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며 한숨이다. 한국무역협회의 최근 조사 결과 수출업계의 적정 환율은 평균 1천229원으로 요즈음은 적정 환율보다 30∼40원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수출업체 중30% 이상이 채산성 적자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국내 수출업체의 70%가 환 위험을 관리하지 않아 환율이 추가로 떨어질경우 수출을 포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의 환율은 올 들어 최고점이었던 지난 4월4일의 1천258원에 비해 불과 2개월여만에 68원(5.4%)이 절상됐다. 거의 널뛰기 수준이다. 환율이 10% 절상될 경우 제조업 전체의 영업이익은 연간 7조∼9조원 감소한다는분석 결과도 있다. 전자, 컴퓨터, 자동차 등 수출 주력 산업이 환율에 민감하며 봉제, 가죽, 신발,섬유제품 등 저개발국과 경쟁하는 수출업체의 어려움이 크다. 특히 고정 환율을 택하고 있는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수출품은 환율 하락이 치명적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은 수출이다. 소비와 투자 등내수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그나마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환율 하락으로 수출이 큰 타격을 받으면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있는 성장률 4% 달성은 물 건너가기 마련이다. 지난달 콜금리 인하와 4조원의 추경편성 등 경기 부양책도 약발을 잃게 된다. 부동산 문제 때문에 경기 부양을 위해 콜금리를 더 내릴 수는 없는 데다 추경의추가 편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환율의 급격한 하락은 우리 경제에 단기적으로 '독약'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최근의 환율 하락은 외국인의 주식 매수가 주도하고 있지만 지난달 외국환평형기금채권 10억달러의 성공적인 발행 이후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들여오는 중.장기 외화 차입도 환율 하락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고 경기 침체로 수입이 위축된 데다 사스 여파로 해외여행객이 줄고 에너지쪽의 비수기가 겹치면서 달러 수요가 감소한 것도 환율에 하락압력을 가중하고 있다. 외환은행 딜링룸의 류현정 과장은 "외환 당국의 노력으로 하락 속도가 둔화된것은 사실이지만 달러 수요 감소에 비해 공급은 넘쳐 당분간은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는 견딜만 하지만 환율이 추가 하락할 경우 경상수지 등에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책임연구원은 "엔화가 일본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달러당 115엔 이상에서 지지되고 있어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하고 "하지만 환율 하락세가 멈추지 않을 경우 경상수지 등 거시 경제 전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 관계자는 "올 들어 환율이 1천170원(1.30일)까지 떨어진 적이 있고 연 평균 환율도 1천200원 수준이어서 현재의 환율이 지나치게 낮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고 "다만 하락 속도가 빨라 기업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