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스트증권(소버린투자운용의 자회사)의 SK㈜ 주식 매집으로 촉발된 SK㈜와 SK텔레콤 경영권 위기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든 분위기다. 소버린이 지난 18일 "SK㈜ 주식을 더 이상 사지 않을 것이며 SK텔레콤의 경영에 관여할 뜻도 없다"고 발표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 때문이다. SK 압수수색 이후 추락하던 SK㈜와 SK텔레콤 주가도 한동안 M&A설을 재료로 오르다 다시 약세로 돌아서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SK그룹은 크레스트가 지분을 빠르게 늘리는 동안 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SK㈜ 14.99%를 매집한 소버린은 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을까. "SK텔레콤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소버린의 말을 과연 믿어야 할까. SK는 비책이 있다는데 카드는 무엇일까. 심지어 소버린이 SK의 '백기사'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주식 매집시 SK 뭐했나 SK그룹은 크레스트가 SK㈜ 주식 매집에 나서 지분을 8.64%까지 올렸다고 공시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사주 취득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행동에는 나서지 않았던 것. 왜 그랬을까. SK그룹 관계자는 "35.28%였던 SK㈜ 외국인 지분율이 25.15%까지 떨어졌다가 회복되는 추세여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뿐 한 외국 자본이 대량 매집에 나섰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정 창구를 통해 대량 매집이 이뤄지고 있음이 분명했음에도 SK그룹이 안이하게 바라만 봤는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물론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증권가 일각에서는 소버린이 짧은 기간동안 주식 매집에 나선 점을 들어 SK와 교감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소버린 더 움직이지 않나 소버린은 지난 14일 14.99%까지 SK㈜를 매집한 이후 18일 "더 이상 추가 매집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참여연대 접촉,SK㈜ 경영진 면담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던 제임스 피터 소버린 최고운용책임자도 모나코로 돌아간 상태다. 소버린은 이에 대해 "우리는 장기투자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외국인이 한 기업의 주식을 10% 이상 취득한 뒤 6개월 이내에 매각하면 시세차익을 해당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는 증권거래법 규정 때문에 소버린이 느긋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버린 SK텔레콤에 관심없나 소버린과 만났던 SK㈜ 유정준 전무는 "소버린과 면담시 텔레콤의 'T'자도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버린도 "SK텔레콤 위상에 어떠한 변화도 유발할 의사가 없고 경영에 관여할 뜻도 없음을 명확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참여연대 장하성 교수는 제임스 피터와 만난 직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버린이 찾아온 것은 참여연대가 그동안 SK텔레콤의 경영문제를 일관되게 제기해 왔다는 데 주목한 것 같다"고 말해 소버린이 SK텔레콤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음을 시사했다. ◆SK 경영권 방어는 가능한가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경영권 방어를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적대적 M&A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최태원 SK㈜ 회장과 김창근 그룹구조조정본부장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키로 한 것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SK㈜ 유 전무는 "우리측 카드를 먼저 꺼내보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 카드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SK가 느긋한게 '다른 이유'가 있지 않으냐고 보고 있다. ◆소버린은 '백기사'? 현재까지 SK는 혜택만 보고 있다. 그룹 지주회사격인 SK㈜의 1대주주로 외국인이 등장하면서 출자총액제한이 풀렸다. SK글로벌 회생을 위해 그룹 계열사들이 나서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도 챙겼다. 발표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소버린은 사실상 '백기사(경영권 방어를 돕는 제3의 우호세력)'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SK가 해외의 우호세력을 동원했거나 아예 SK측이 해외에 숨겨둔 비자금을 소버린을 통해 들여온 게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