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가치의 추세적인 약세가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2001년말 1백31엔대를 기록했던 엔.달러 환율이 1백20엔 밑으로 떨어졌고 유로화 환율도 0.88달러대에서 1.06달러대까지 상승하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에서는 지난 85년 9월 플라자 합의 이후 한동안 지속됐던 달러화 약세국면이 재현되는 것인가 하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시각대로 현 시점에서 제2의 플라자 체제가 다시 대두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동안 미 달러화 가치의 약세기조가 지속된 것은 상대국측 요인보다는 미국에서 제공한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90년대초에 이어 쌍동이 적자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도 달러화 약세의 원인이다. 이미 적자로 돌아선 재정수지는 올 회계연도에는 이라크 군비지출 등으로 3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경상수지적자가 5천억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가 강한 달러화 정책 의사를 밝히더라도 시장은 이미 대규모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화 약세가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결국 한동안 안전한 국가(safe-haven country)로 인식돼온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미 달러화 약세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미 달러화 가치의 약세국면이 아직까지 기조적으로 정착됐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미국 이외의 여타 국가도 자국통화 가치가 강세를 보일 만한 뚜렷한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최근 들어 엔화,유로화를 비롯한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미 달러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반사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경기회복의 관건인 일본 국민들의 소비심리가 살아나질 않고 있다. 현재 일본 국민들의 소비는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주어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좀비경제" 국면에 놓여 있다. 통화정책면에서는 금리가 제로수준에 된지 오래됐다. 재정정책면에서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각각 GDP의 11%,1백32%에 이르고 있어 여유가 없어진 상태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감세정책도 초기부터 일본내 경제주체들의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실채권 규모를 37조2천억엔으로 밝히고 있으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것보다 최소한 3배,많게는 5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일본경제가 처한 여건을 감안할 때 현 수준 이상의 엔화 강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 못된다. 현재처럼 민간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엔화가 강세가 될 경우 엔고에 따른 디플레 효과로 경기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럽경제도 유로랜드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가 일본경제처럼 구조병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고,영국,스웨덴,덴마크가 유로랜드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침체가 다른 회원국에게 확산되면서 올해 유럽경제는 의외로 침체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현재 미국경기는 저점을 통과하고 회복국면에 놓여 있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는 상태다. 실제 경험적 확률이나 3개월 평균 주가수익률,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가장 신뢰하는 채권시장에서 형성되는 장단기 금리차를 보더라도 일제히 미국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현재 시장이 미국경제를 불안정하게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이런 회복세가 지속될 것인가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백악관을 중심으로 올 하반기 이후에도 경제성장률이 잠재수준인 2.5% 이상 높아질 것이라는 "U"자형 시각과 조만간 경기가 다시 침체될 것이라는 "W"자형 견해로 나뉘어져 있다. 출범 이후 부시 행정부의 산업정책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산업과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산업간의 균형을 강조하는 '융합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회복세는 지속되지만 회복속도는 종전에 비해 떨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일본과 유럽 등 상대국 경제와 미국의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플라자 합의 이후처럼 미 달러화 약세기조가 정착될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미국경기와 미국증시가 회복될 경우 언제든지 미 달러화 가치는 정상을 되찾을 수 있는 여건이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